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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온 청년 '엉뚱한 실수'···新 수소연료전지 시대 열었다
- 등록일 : 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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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학사 후 석·박사 한국서 취득, 독특한 이력 이성수 KIST 박사
이오노머 미세다공성 구조에 영향 미치는 분산용매 파라미터 발견
비행기 등 대형모빌리티 응용 수소연료전지 시대 개막
KIST 이성수 물질구조제어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명함에는 2개 이름이 적혀있다. 하나는 미국이름 'Albert S. Lee', 하나는 한국이름 '이성수'다.
이 박사는 초·중·고·대학까지 유년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과학도이던 부모님이 유학 중 미국에서 그를 낳았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길 바라시는 마음을 담아 부모님이 한국이름을 붙여주셨다.
어릴 적 조부모를 뵈러 자주 찾았던 한국은 그에게 낯설지만 따뜻한 곳이었다. 미국에서 학사 이후 석박사를 한국에서 하겠다고 결심한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말은 많이 서툴었지만 따뜻한 동료와 선후배를 만나 적응했다. 석박사 졸업 후에는 한국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KIST에서 올해로 10여 년째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를 연구하는 그는 최근 소형 모빌리티에 국한됐던 수소연료전지를 트럭, 지하철, 비행기, 선박 등 대형모빌리티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성능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실수 아닌 실수에서 얻은 성과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월 '이달의 KIST인상'도 수상했다.
"수소연료전지는 한계가 없다. 그래서 매력적"이라 말하는 이 박사를 지난 5월 중순 KIST에서 만났다. 그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이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연구는 무엇인지 자세한 이야기 들어봤다.
미국 돌아갔던 이 박사, 다양한 경험 쌓고 다시 한국 찾다
어릴 적 화학에 관심 있던 소년이던 그는, 미국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 후 2008년 졸업했다. 2008년은 리먼 사태를 시작으로 초대형 금융위기가 있던 시기다. 글로벌경제는 침체됐고 어느 분야든 취업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장래에 대한 고민이 많던 그는 부모님과 잠시 한국에 머물었다. 그 때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에서 외국인 연구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알게 돼 지원했다. UST는 대학이 아닌 정부출연연구원 현장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학위를 딸 수 있는 대학원 대학이다.
석사학위를 먼저 해볼 요량으로 시작했지만 첫 사회생활이기도 한 한국의 연구 환경에 만족했다. 석박사, 박사후 연구원까지 약 8년을 KIST에서 보냈다. 오랜 한국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그는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 (LANL) 연구원으로 떠났다. 더 발전된 연구를 위해 새로운 곳에서 경험이 필요했기에 한 선택이다. 핵무기 개발 연구소로도 유명한 그곳에서 이 박사는 '수소연료전지'에 매력을 느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미래 내가 가야할 길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LANL에서 화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고분자를 합성하고 평가하거나 직접 만든 소재가 연료전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료전지 효율, 성능을 측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연구를 할수록 이 분야에 매력을 느꼈다"며 "새롭게 알게 된 수소관련 연구가 앞으로 더 많은 쓰임새가 있을 것 같았다. 당시엔 탄소중립이 큰 이슈는 아니었지만 미래 산업에서 이산화탄소 절감을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해 매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LANL에서 수소연료전지에 매진하던 그는 2019년 다시 한 번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번엔 학생신분이 아닌 KIST 연구원으로 왔다. 미국에서 일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부모님의 나라 한국을 택했다. 그는 "미국에서 새로운 분야를 접하고 좋은 경험을 했다. 훌륭한 연구자분들과 잘 갖춰진 실험환경 등 굉장히 좋았지만 한국에서 연구생활이 떠올랐다"며 "KIST는 미국에 뒤지지 않는, 어떤 부분에선 더 좋은 연구 환경이 갖춰진 곳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의 여러 박사님들과 협력해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이 KIST의 장점"이라며 다시 한 번 한국 땅을 밟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수소연료전지 대형 모빌리티 적용 조건 충족시키다
이 박사는 현재 LANL에서 경험을 살려 연료전지 시스템의 출력 향상과 내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분리막 연구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연구를 통해 최근 수소연료전지를 대형모빌리티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용량과 작동환경 등 성능을 개선하는데 성공했다.
수소연료전지는 공해물질을 내뿜지 않아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받는다. 자동차 등 작은 이동수단에 적용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를 대형 모빌리티에 적용하기 위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으나 해결해야할 이슈가 있다. 160~180℃에서 작동하는 고온형으로 개발될 것과 무가습 조건이 필요하다.
이 박사는 "상용화된 수소 차에 들어가는 저온-연료전지는 스스로 발생시킨 열을 방출시키지 못해 냉각장치를 함께 설치해야한다. 냉각장치의 부피가 큰데다 무거워 효율이 떨어진다“ 라며 "일반 자동차와 달리 수소차를 열면 냉각장치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팀은 고온-연료전지 촉매층에 쓰이는 이오노머의 미세다공성 구조를 조절해 별도의 냉각시스템 없이 고온, 무가습 조건에서 작동 가능한 수소연료전지의 성능을 결정짓는 요소로 이오노머 분산용매의 pKa (산성도)를 발견했다. 이 연구는 그가 미국에서 몸을 담았던 LANL 김유승 박사팀과 공동연구했다.
기존 상식 뛰어넘은 결과 "유해물질 에너지원 활용토록 매진하는 것 꿈"
그는 이번 연구를 위해 연료전지의 성능 향상을 위해 분리막만 개선하면 된다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고 이오노머를 함께 개선했다.
그 결과 이 박사팀은 포스폰산(RPO3H2)을 함유하는 고분자와 설폰산(RSO3H)을 함유하는 고분자를 블렌딩한 복합 이오노머를 분산(녹인)시킨 용매에 따라 이오노머의 미세다공정 구조가 달라짐을 발견하고 원인을 규명했다. 특히 연구진은 이오노머의 기공이 많을수록 수소연료전지 성능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다공성이 증가할수록 수소와 산소의 접근성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이번 성과는 평소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기 좋아하는 이 박사의 호기심도 한몫했다. 유난히 퇴근이 늦었던 밤, 고온-수소연료전지가 아닌 저온-수소연료전지에 사용하는 이오노머 및 분산 용매를 한두 방울 섞어 실험기기를 돌리고 퇴근한 사이 성능이 확 개선됐던 것이다.
이 박사는 "아침에 일어나 전화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실수 아닌 실수가 이번 연구의 핵심이 됐다"며 "고온-수소연료전지는 개발로 대형 모빌리티에도 응용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연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연구가 많다. 그는 "분리막과 이오노머를 합성하는 연구를 하기 때문에 수전해 소재들을 만들거나 암모니아나 이산화탄소를 사용한 새로운 형태의 전지를 만드는 연구도 해보고 싶다"며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에 도전할 것"이라며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