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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는 성장 엔진을 재점화하자
윤석진 KIST 원장 우리 경제에 드리운 암운이 점차 짙어지고 있다.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잠재성장률의 추이를 보면 앞날이 두려울 정도다. OECD가 전망한 올해 우리 잠재성장률은 10년 전의 절반에 불과한 1.9%로, 사상 첫 1%대를 기록했다. 이를 외부 충격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도 어렵다. 내년에도 회복은커녕 1.7%로 하락세가 가팔라질 전망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다른 주요국에서 최근 몇 년간 잠재성장률이 다시 오르는 추세와는 정반대다. 이미 일본처럼 장기침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대로 제로성장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일까? 더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저성장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할 시점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는 않다. 자국 우선주의, 기술패권 경쟁, 세계 각지에서의 전쟁 발발 등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다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에 맞닥뜨린 독일의 상황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내연기관차, 기계 등 전통적 제조업에 집중하다 전기차 등 첨단 산업에서 경쟁력을 잃고, 에너지 공급과 높은 중국 의존도에 따른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의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속히 줄고 있다. 과거에 누려왔던 젊은 인구구조의 혜택이 희석될 암울한 미래를 대비해 성장 엔진의 본질적 구조를 손봐야 할 때이다.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그 중심에는 과학기술 혁신의 결과를 우리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켜 줄 역동적인 혁신생태계 조성이 있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기존의 틀을 깨는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이를 내재화함으로써 우리 경제를 뒷받침할 산업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장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의 분야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지만 그 이후를 담보해 줄 미래 먹거리가 분명치 않다. 다만 절실함이 앞서 폐쇄적 혁신에 갇히는 우를 범하지는 않아야겠다. 급한 만큼 차분히 주변으로도 눈을 돌려보라 권한다. 특히 지난 50여 년 동안 그 자리에서 꾸준히 미래를 준비해 온 공공 R&D 부문의 원천기술은 위기의 돌파구 마련에 큰 힘이 되어주리라. 개발된 기술을 기업이 이전받고, 산업화까지 지난한 과정을 밟는 과거의 선형적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혁신은 기술이 사업화되는 모든 과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위해 혁신 주체들이 더욱 자주, 긴밀히 소통하며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공동연구실 운영, 인력교류 등을 통한 KIST와 대기업 간 협력체계는 좋은 사례다. KIST는 보유 중인 미래 원천기술로 LG화학과는 탄소중립, 포스코와는 인공지능, 수소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신산업 개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혁신생태계 조성의 성패를 가를 다른 한 축은 기술 기반의 창업 활성화다. 기술 창업기업은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주체일 뿐만 아니라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담당함으로써 건강한 혁신생태계의 핵심 구성원이 된다. 최근 미국 보스턴이 혁신생태계의 성공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까닭은 바이오부터 AI, 로보틱스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수천 개의 창업기업이 기술 혁신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창업 열풍으로 많은 기술 창업기업이 생겨났었지만 대부분 실패에 그쳤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올바른 기업가정신의 부재, 개발된 기술들이 산업화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외면받은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그동안 성공 사례가 축적되었음은 물론이고 사회의 눈높이에 맞는 창업 의식도 갖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연구자들의 용기에 더해 엑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탈, 기술지주회사 등 투자와 행정을 도와줄 인프라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어떨까? 우리도 보스턴 부럽지 않은 세계적인 혁신생태계를 키워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원천기술을 중심으로 뭉친 기업과 연구기관 간 협력, 그리고 기술 기반 창업 활성화로 만들어질 혁신생태계가 꺼져가는 성장 엔진에 다시 불을 붙이길 희망한다. 출처 : 한국일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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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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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 대뇌 오가노이드, AI 미래 바꾼다
김형준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최근 10년 동안 인공지능(AI)은 놀라운 발전을 거뒀다.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운전하는 자율주행기술과 같이 인간의 작업을 자동화할 뿐만 아니라 AI의 작품이 미술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AI가 우리 일상에서 사용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나 한계 역시 존재한다. 현재 챗GPT와 같은 초거대 AI는 학습을 위해 일반 가구에서 소비하는 일일 전력량의 10만 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소모하며, 그로 인해 약 500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AI는 아직 인간 수준의 지능에 도달하지 못하며, 복잡한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지는 AI의 개발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 중의 하나는 뇌의 복잡성이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뤄져 있으며, 이 신경세포들은 뇌의 영역과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동작한다. 또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관계 학습 및 예측과 같은 고차원의 인지 기능을 수행한다. 현재의 AI 기술은 이러한 신경세포의 다양성과 신경망의 복잡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뇌를 구성하는 다양한 신경세포의 연결 규칙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뇌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모방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으로 '대뇌 오가노이드'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인간 유도 만능 줄기세포에서 유래된 3차원 조직 모델로, 알츠하이머와 관련된 실험적 모델로 많이 사용되지만, 뇌의 미세구조와 기능을 모방했기 때문에 최근 AI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대뇌 오가노이드는 뇌의 신경세포, 신경교세포, 혈관세포 등을 포함해 인간의 뇌와 유사한 신경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대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AI 연구는 인간 뇌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인간 수준의 학습 및 추론 능력을 개발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대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AI 연구의 한 가지 방향은 AI의 학습 과정을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유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AI 모델을 대뇌 오가노이드에 연결해 학습 데이터를 제공하고, 대뇌 오가노이드의 신경세포 활동을 모니터링해 학습 과정을 이해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021년에 인디애나대학교 연구진은 대뇌 오가노이드에 연결된 AI 모델을 사용해 수학 방정식을 푸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AI 모델이 대뇌 오가노이드의 신경세포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의 뇌와 유사한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AI 연구의 또 다른 방향은 AI의 인지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인간의 뇌 구조와 기능을 더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AI 모델을 설계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연구진은 대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인간의 뇌에서 학습과 기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연구했다. 이 연구는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세포 네트워크를 밝혀냈고, 이를 바탕으로 AI 모델의 학습 능력을 향상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현재 대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AI 연구는 인간 뇌와 AI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 수준의 지능을 모델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AI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대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AI 연구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을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대뇌 오가노이드를 정밀하게 배양하고 조절할 수 있는 기술, 대뇌 오가노이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경 세포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도록 전극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아울러 대뇌 오가노이드를 통해 두뇌의 효율적인 정보처리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분석 및 모델링 기술, 그리고 이러한 정보처리 메커니즘을 전자 소자 및 시스템으로 모사할 수 있는 소자 기술과 설계 기술이 필요하다. 대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AI 연구는 현재 초기 단계에 있지만, 그 잠재력은 매우 크다. 대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인간의 뇌를 더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AI 알고리즘을 개발한다면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뇌 오가노이드를 다루고 관찰하기 위한 관련 기술들 또한 뒷받침돼야 한다. 이러한 과제들이 해결된다면 대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AI 연구는 AI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머니투데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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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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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6차 대멸종’ 앞둔 지구의 마지막 경고… 이산화탄소 잡아라
이웅 KIST 청정에너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 [과학 라운지] 이산화탄소 포집, 원료로 바꾸는 CCU 기술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 지구가 탄생한 이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로 약 2억5200만 년 전의 페름기 대멸종이 있었는데, 당시 해양 생물 96%와 육상 척추동물 70%가 멸종했다. 대멸종의 원인은 바로 ‘이산화탄소’였다. 대규모 화산 활동으로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대량 방출되면서 지구 평균온도가 6도 가까이 상승했고, 해양에 녹아 들어간 이산화탄소로 바다가 산성화돼 많은 생물종을 사라지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세 멸종’으로 불리는 6차 대멸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류세(인간세, Anthropocene)’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파울 크뤼천이 2000년대 초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오늘날 인류 문명의 발전으로 지구 환경의 극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지질시대의 구분을 뜻한다. 최근 이산화탄소 배출과 인류세 멸종을 연관 짓는 연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인간이 자연을 압도하고 기후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파리협정으로 촉발된 탄소중립, 탄소저감 관련 정책들을 살펴보면 결국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인류의 동력을 당장 친환경 에너지로 100%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석탄, 석유를 사용하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재활용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CCU) 기술은 대기 중 또는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후, 메탄올과 같은 유용한 자원으로 전환해 산업 원료로 사용하는 친환경 기술이다. 한국은 2030년을 목표로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제철소, 화력발전소 등에 이산화탄소 포집 장치를 설치해 탄소를 분리하고 모아두는 설비를 이미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재 CCU 기술 수준에서 단시간 내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적정 수준으로 저하시키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루에 포집할 수 있는 최대 탄소량은 200톤 정도에 불과해 선진국 수준인 5000톤 이상으로 포집량을 늘리려면 대규모 실증 시설 확대가 필수적이다. CCU 기술은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 미국과 스위스에서 개발해 시범운영 중인 직접탄소포집(DAC) 기술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해 유용한 화합물을 생산한다.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면 모든 가정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필요한 만큼의 유용한 화합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기술 개발과 투자가 진행돼야 한다. 출처 : 조선경제(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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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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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의 파란불은 왜 초록색일까
서민아 KIST 센서시스템견구센터 책임연구원 [아무튼, 주말] [서민아의 물리학자의 팔레트] 나는 한때 낯선 나라, 도시에 갈 때면 건널목 신호등이 다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진 것을 유심히 보고 사진으로 모아본 적이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초록색과 붉은색으로만 만든 신호등이 있고, 또 어떤 곳에는 안에 걷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걷는 사람의 모양도 힘차게 팔을 흔들며 걷는 모양,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모양이 제각기 달라서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는 신호등을 파란불과 빨간불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 불빛이 아닌가. 그런데 매우 드물지만 어떤 도시의 신호등은 실제로 파란색이기도 했다. 왜 미세하게 색과 모양, 그리고 실제 색과 부르는 이름이 다른 걸까. 그렇게 시작된 표지판 색에 대한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몇 가지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파란색과 초록색은 색깔을 나타내는 스펙트럼에서 근처에 존재하는 색이다. 우리말에서도 파란색과 초록색은 푸르다는 넓은 의미에 포함되어 두루두루 함께 쓰인다. 실제 초록색인 숲도 푸른 숲이라고 하듯이. 이는 ‘푸르다’는 폭넓은 의미를 가진 언어가 오랫동안 지배적으로 쓰였고, 후에 색에 대한 개념이 세분화됐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언어권에 따라 초록색과 파란색을 구분하거나 묶어서 부르는 경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초록색이 신호등이나 안내판에 많이 사용되지만 이를 ‘파란불’이라고 부르는 건 넓은 의미에서 푸른색으로 통칭하던 데서 왔다. ‘일곱 빛깔 무지개’란 표현도 뉴턴이 처음 프리즘으로 빛을 나누었을 당시 조화로운 의미로 쓰인 일곱이라는 숫자를 도입하여 나눈 것이지, 다른 숫자를 적용했다면 무지개색은 열두 색이 되었을 수도 있다. 색의 스펙트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서 어디까지 노란색이고 초록색인지 경계가 불분명하고, 그 사이에 연두색도 있지 않은가! 적도 부근의 중앙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는 유독 자외선(무지개색 스펙트럼에서 보라색의 바깥에 존재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색)이 매우 세다. 이런 나라에서 유독 파란색과 초록색을 구분하지 않고 묶어서 부른다는 학설도 있다. 보통의 경우 초록색으로 보이는 물체가 과도한 자외선 빛에서는 파란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통합해서 부른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의 진화와 색의 명명은 문화, 역사 및 지각 능력을 포함한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 복잡한 현상이기 때문에 한 가지 근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름은 그렇게 불린다고 하고, 정작 신호등에서 멈춤 신호는 빨간불인데, 지나가도 좋다는 사인은 왜 초록색일까. 또 비상구 표지판은 왜 초록색일까. 사람에게 ‘금지’라든가 주의를 시키는 표지판은 강한 인상을 주고 시선을 끌기 위해 빨간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건물이나 계단 등의 비상구 표시는 신호등 색처럼 초록색이다. 비상 상황에서 출구 위치를 알려주는 이 사인은 정전같이 어두운 환경에서 사람 눈이 보이는 반응으로 결정된다. 사람의 눈은 밝은 곳에서는 붉은색을 강하게 인지하지만, 빛이 부족한 곳에서는 초록색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망막에 색을 인지하는 세포들이 있는데, 우리가 빛의 삼원색이라고 부르는 빨강, 초록, 파랑(Red, Green, Blue)에 각각 반응하는 원추세포들이 존재한다. 이 중 빨간색은 자연의 색과 가장 보색이면서 구분이 되고, 가장 긴 파장을 가져서 산란이 적게 일어나 먼 곳에서도 식별할 수 있다. 주의나 경고 표지판에 많이 쓰이는 이유다. 이 외에도 빛의 명암을 인지하는 간상세포가 따로 존재하는데, 이는 매우 약한 빛의 명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색을 구별하는 원추세포보다 간상세포가 활발하게 반응하고, 이 간상세포는 특별히 초록색에 조금 더 민감하다. 정전 같은 어두운 환경에서는 빨간 불빛보다 이 간상세포가 상대적으로 더 민감한 초록 불빛이 사람들의 시야에 잘 들어온다. 우리가 규칙이나 규범이라고 정의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 대부분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간의 약속, 언어와 문화적 배경으로 정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듯 기저에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색깔에 관계된 규칙이라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으리라. 빛과 색의 과학은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출처 : 조선경제(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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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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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속마음을 읽다
남기표 KIST 인공지능연구단 선임연구원 [과학라운지] “당신은 사람을 죽인 적이 있습니까?” “네.”, 당황하는 수사관들. “당신은 남편 임호신을 죽였습니까?”, “아니요.” 영화 ‘헤어질 결심’ 가운데 인상 깊었던 거짓말 탐지기 장면이다. 거짓말 탐지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경찰이 범죄 용의자를 신문하는 장면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짓말 탐지기의 공식 명칭은 ‘폴리그래프’이고, 사람들이 거짓을 진술할 때 평소와는 다른 신체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활용해 호흡, 맥박 등의 생체 신호 반응 그래프로 진실 여부를 판단한다. 안면 이미지를 분석해 표정을 인식하는 기술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AI를 기반으로 영상에 나타난 대상자의 표정, 미세한 떨림 등을 바탕으로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이 같은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감정 인식은 여전히 난해한 분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감정이 가장 크게 표출되는 신체 기관은 얼굴이지만, 얼굴 표정이 모든 감정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감정을 정확히 판단하기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재 얼굴 정보뿐만 아니라 얼굴 내의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 동공의 크기 변화 등 자율 신경계 반응 정보도 함께 활용되어야 한다. KIST는 사람의 감정을 판단하기 위해서 안면 영상에서 다양한 특징을 분석할 수 있는 AI 기반 생체 신호 감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얼굴 표정과 더불어 눈 깜빡임 빈도, 동공의 움직임 속도, 시선의 방향 등 다양한 정보를 추출해 이를 신호화하고, 분석하는 연구다. 영상을 통한 비접촉식 심박수 추출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신체의 내적 생체 신호와 얼굴로 표출되는 외적 생체 신호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고성능 감정 판단 기술 설계도 진행 중이다. 이런 기술을 토대로 범죄 수사에서 용의자의 신문뿐만 아니라 출입국 심사 시 밀반입을 시도하려는 대상자를 선별하거나 보이스피싱 피해자 감지 및 예방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 가능하다. 한 발 더 나아가 대상자의 감정 상태에 적합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나 스마트 홈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술이다. 물론 지금의 AI 기반의 생체 신호 감지 기술은 CCTV 등과 같은 일상생활 환경이 아닌 표준화된 상태에서만 작동할 수 있어서 궁극적인 설루션이 아닌 보조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을 제시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기술을 성숙시키는 과정과 함께 범죄 수사 등에서 더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실증 데이터를 쌓아간다면 사회 안전망의 핵심적인 기술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조선경제(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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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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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새로운 컴퓨팅 패러다임 '확률론적 컴퓨팅'
김형준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트랜지스터가 개발된 지 75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작동 원리의 트랜지스터로 디지털 컴퓨터를 만들고, 안정적인 0과 1에 기반한 디지털 비트 또한 변함없이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컴퓨팅 분야는 언뜻 보아서는 획기적인 변화 없이 점진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양자 중첩 현상에 기반한 양자비트, 즉 큐비트(qubit)를 활용한 양자컴퓨터가 실험실 수준에 벗어나 IBM, 구글, 인텔 등 거대 IT 기업들을 필두로 상용화 혹은 매우 복잡한 계산을 통한 실용적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활발히 모색 중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0과 1의 디지털 비트와 달리 0과 1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는 0 또는 1을 가질 수 있는 확률로 존재하지만 측정하는 순간 0 또는 1의 한 가지 상태만 갖게 된다. 이러한 양자적 현상이 양자 알고리즘과 결합하면 기존 컴퓨터로는 풀기 어려웠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완전히 이해하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수준까지 도달하기에는 긴 시간의 연구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0과 1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비트를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시간에 따라 0과 1의 상태가 변하는 비트를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동전 던지기를 하면 앞면 또는 뒷면이 나올 확률이 각각 50%이듯 이러한 확률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런 불안정한 비트로는 정보를 안정적으로 저장해야 하는 저장매체는 커녕 디지털 컴퓨터로도 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에 이러한 무작위 비트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식의 컴퓨팅이 제안되었고 이를 '확률론적 컴퓨팅'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수많은 무작위 비트를 활용해 수많은 경우의 수를 탐색해야 하는 최적화 문제, 암호학, 머신러닝, 인공지능(AI), 생물학, 화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난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미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가장 빠른 알고리즘의 성능에 필적하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어서 전 세계가 그 놀라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확률론적 컴퓨팅의 급격한 발전 속도는 적절한 알고리즘의 개발과 더불어 그것이 갖고 있는 물리적 장점에 기인한다. 무작위 비트는 우리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첨단 반도체 소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그 특성은 대부분 상온에서 안정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새로운 방식의 컴퓨팅 기술로 발전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극저온에서도 막기 힘든 잡음과 그로 인한 오류 정정 문제로 활용 가능한 비트 수를 쉽게 늘리지 못하는 양자 컴퓨터와는 차별화되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초전도체, 광자 등 기존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지 않는 물질을 필요로 하는 양자컴퓨팅과 달리 확률론적 컴퓨팅은 기존 반도체 공정 프로세스와 메모리 반도체에 사용되는 물질을 사용한다는 점도 기술개발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따라서 확률론적 컴퓨팅과 양자 컴퓨팅을 동시에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더 넓은 범위의 선택지와 상호 보완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양자 컴퓨터가 그러하듯 확률론적 컴퓨터도 우리가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범용 컴퓨터로 발전하기에는 많은 제약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컴퓨터로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를 들면,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교통신호등 체계를 최적화하여 교통 흐름을 더욱 원활하게 하거나 미래에 등장할 드론과 플라잉택시와 같은 도심항공교통이 안전하게 최적 경로를 실시간으로 찾는데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적화된 소자, 회로, 알고리즘 개발 등이 함께 필요하다. 확률론적 컴퓨터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인 차세대 컴퓨팅으로 기초 연구를 통해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적 원천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다양한 차세대 컴퓨팅 기술 개발이 한창인 지금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초창기 기술의 선점효과 뿐만 아니라 관련 지식재산권 확보와 나아가 기술패권 경쟁 시대의 훌륭한 자산으로서 발전 가능성이 기대된다. 출처 : 머니투데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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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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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 소녀' 속 파란색은 왜 특별해 보일까
서민아 KIST 센서시스템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아무튼, 주말] [서민아의 물리학자의 팔레트] 대중 강연에서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다. “물리학자 뉴턴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과! 맞는다. 뉴턴 하면 사과지. 그런데 정작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에게 뉴턴 하면? 답은 ‘무지개’다. 뉴턴은 프리즘으로 우리가 하얗다고 생각하는 햇빛 속에 일곱 빛깔 무지개(빨주노초파남보)가 숨어 있음을, 그리고 프리즘을 이용해 이 색깔을 나누어 펼쳐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책에 밝힌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빛의 과학, 광학(光學·Optics)의 시작이었다. 최근에는 흑백사진 속에서 색깔 맞추기, 드레스가 파란색으로 보이냐 흰색으로 보이냐 등 ‘보이는 색깔’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그래서 답이 뭐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답은 없다. 사람에 따라 밝은 곳에 놓인 파란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두운 곳에 놓인 흰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람마다 색을 보는 시각 세포의 민감도가 조금씩 다르고,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을 통과한 빛의 양뿐만 아니라 뇌의 ‘판단’이 더해져야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저마다 다르게 ‘착시’를 겪는다는 뜻이다. 빛과 색은 다르다. 빛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분석하는 것은 엄밀하게 뉴턴이 이끌던 과학의 영역이고 색에 대해 다가가는 것은 좀 더 예술적이고 인문학적 접근이다. ‘색깔’이라는 것은 빛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이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빛에서 출발해, 우리의 기억을 관통하여 언어화된 색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갑자기 왜 이렇게 색깔에 대한 이슈와 논쟁이 늘어난 걸까. 어쩌면 ‘빛과 색’의 관계에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생긴 일종의 새로운 흐름이 아닐까. 지금부터는 우리가 아는 색깔에 대한 절대적이고 단편적인 정답을 과감하게 버려보자. 빛이 어떤 마법을 부려 우리가 그렇게 색을 바라보게 된 건지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천천히 풀어내 볼까 한다. 어디서 출발할까. 색의 비밀에 대해 한 걸음 다가가려고 하니 곧바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색은 무슨 색일까?” 빛과 색의 관계를 연구하는 처지에서는 파랑이 단연 1순위다. 수많은 색 중에서도 파랑은 유독 자연에 없는 색이다. 자연에 흔하게 존재하지 않기에, 오랜 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가장 갈망해 온 색이 바로 파랑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늘이나 바다의 파란색은 그 자체가 파란색 색소를 지닌 게 아니다. 파란색 빛이 산란을 많이 일으켜 눈으로 들어와 ‘파랗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화가들에게 이 귀한 색깔은 특별했다. 우리에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알려진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는 울트라마린(청금석)이라는 보석에서 추출한 파란색 물감을 즐겨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파랗게 보이는 부분에만 파란 물감을 칠하지 않았다. 가령 흰색 커튼이나 앞치마 등 밝은 색 사물은 햇빛을 받은 부분은 다소 노랗게 보이고, 그늘져 어두운 부분에서는 푸른빛이 돈다는 과학적 사실을 직관적으로 간파하고 있었다. 빛과 색이 어떻게 캔버스 위에서 함께 어울려 춤출 수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고흐도 과학자만큼이나 파란색에 민감했다. 다행히 고흐가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는 다양한 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값싼 파란색이 등장했다. 그는 코발트블루라는 파란색에 들어가는 원소의 비율을 의식해 물감 제조사를 고를 만큼 색을 고르는 데 신중하고 애착이 있었다. 그에게 파란색은 단순히 하늘의 푸르름을 표현하는 색이 아니었던 것 같다.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명화 속 하늘의 파란색을 떠올려 보자. 그에게 노란색이 사랑의 표현이자 생의 에너지였다면, 그와 대비되는 어두운 파란색은 내면의 깊은 심연을 의미했다. 파란색을 사랑한 화가들은 특별히 빛의 효과를 의식해 그리거나, 색을 선택하고 만들 때 신중함을 보였다. 마치 과학자들처럼. 화가들은 파란색 물감을 이용해 수백 년 전의 빛을 화폭에 담아 놓았다. 기나긴 팬데믹이 끝나며 미술관들이 다시 문을 활짝 열었다. 화창한 여름날에 어느 미술관에 찾아 들어가 화가들이 숨겨둔 파랑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 옛날 빛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행운을 당신도 누릴 수 있기를. 출처 : 조선일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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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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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의 전쟁 끝낼 ‘히어로’가 온다
서승범 KIST 헬스케어로봇연구단 선임연구원 [과학 라운지] 박테리아로 만든 ‘마이크로 로봇’ 항암제 싣고 암 조직에 직접 전달 단순히 약 전달을 넘어 체내에서 항암 단백질 만들어 암세포 제거 1890년대 미국의 종양학자 윌리엄 콜리는 암 환자를 치료하던 중 패혈증으로 사망한 환자가 누워 있었던 병상에 암 환자를 눕혔더니 암 크기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박테리아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단서를 찾은 콜리는 죽은 박테리아로 만든 혼합물인 ‘콜리 독소’(Coley’s Toxin)를 환자들에게 투여했다. 치밀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임상 치료였기에 환자가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오늘날 그는 면역항암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박테리아, 즉 세균은 공기나 흙에도 존재하지만 몸속에서 살기도 하는 생명체로 독자 생존이 가능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동력이 있다. 다른 세포에 기생해야만 하는 단백질인 바이러스와는 다르다. 생활폐기물 등을 분해해 자연을 정화하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 독소를 분비해 식중독, 파상풍, 폐렴 등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 아침 장건강을 위해 챙겨먹는 프로바이오틱스도 일종의 박테리아인데, 이처럼 수없이 다양한 형태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박테리아의 크기는 수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하다.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몸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인간의 체내에 침투하는 마이크로 로봇으로 만들고자 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분야는 암 치료다. 산소가 부족한 암 조직 주변에서도 증식이 가능한 혐기성 박테리아의 특성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연구를 통해 발견한 다양한 항암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DNA를 삽입하게 되면, 박테리아는 단순한 약물 전달자가 아니라 항암 단백질을 생산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체내에 주입된 박테리아가 암세포에 도달하면, 초음파 또는 특정 화학물질과 같은 외부적 자극을 통해 항암 단백질을 생산한다. 목표물까지 신속하게 이동해 항암 단백질을 생산, 암세포를 제거한다. 이런 연구는 기존 치료법의 문제, 즉 항암제가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를 파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항암제를 실은 박테리아가 암 조직까지 이동해 증식한다면 정상 세포가 파괴될 염려는 없다. 한편, 3세대 암 치료법인 면역항암의 과정에서 박테리아는 직접 암 세포를 공격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체내에서 암세포와 싸우는 면역세포를 돕기도 한다. 면역항암은 환자 스스로의 면역 강화를 통한 치료라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교활한 암세포가 정상 세포인 척 자신을 숨길 경우에도 면역세포로 하여금 암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치료법이다. 암 조직에 도달한 박테리아는 면역 항암이 가능하도록 면역세포를 불러 모으고, 면역 반응물질도 분비해 효과를 극대화한다. 최근 박테리아에 항암제를 탑재해 암 조직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한 후 항암 및 면역 기폭 물질을 분비하는 치료 방법이 동물 실험에 성공한 바 있다. 암세포가 자리 잡은 순간부터 사람의 몸속은 치열한 전쟁터가 된다. 면역세포만으로 물리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 적은 너무 강하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빠르게 전선으로 이동, 효과적인 무기를 사용해 적을 제압하고, 면역세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다재다능한 박테리아 로봇이 곧 등장할 테니까. 연구의 단서는 일상을 다르게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화장실의 물때에 불과한 존재일 수도 있는 박테리아를 암의 진단, 치료, 예방에 널리 활용하는 연구가 이미 동물 실험 단계에 진입했다. 가까운 미래에는 사전에서 ‘박테리아’를 검색하면, ‘암 치료에 사용되는 미생물’이라는 새로운 정의가 소개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출처 : 조선일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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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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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 우려에서 극복의 길로
김진상 KIST 전북분원장 한 나라의 재정 건전성은 통상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기반으로 평가한다. D1, D2 등으로 분류되는 국가부채 중 국제적 지침으로서 통상적으로 국가 간 비교에 쓰이는 국가부채는 D2로, 이는 중앙정부 및 지방·교육 지자체 부채를 의미하는 D1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포함한 일반정부 부채에 해당한다. 그런데 IMF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2년 말 기준 GDP 대비 D2 비율은 54.6%로, 선진 35개국 중에서 통화 발행에 따른 구조적 채무에서 자유로운 非기축통화국의 지난해 연말 기준 평균인 52.0%보다 높고 2027년에는 57.8%로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한국경제연구원은 OECD 非기축통화국 17개국 중 우리나라 국가부채 비율 순위가 2020년 9위에서 2026년 3위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국세 수입, 자산운용 수입 등을 확충하여 세입의 기반을 만드는 한편, 세출을 제한해야 한다. 하지만 이 단순한 원리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면서 잠재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대한민국에게는 해가 갈수록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야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노동생산성의 향상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더라도 생산성이 개선된다면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노동자가 벌어들일 수 있는 재화를 의미하며 GDP를 모든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으로 나눈 값에 해당한다. 한국인의 연간 평균 노동 시간은 2021년 기준 1,915 시간으로 OECD 36개국 중 네 번째로 많으나, 노동 생산성은 41.7달러로 하위권인 27위에 속한다. 1위 아일랜드의 노동생산성(111.8달러)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사업장에서 노동 시간은 지속적으로 줄어 왔지만 노동생산성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노동생산성을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 새로운 근로 기준안의 마련과 더불어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첨단 산업을 선도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 역시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기업의 약진 소식은 꽤 고무적이다. 스타트업으로 기업 가치가 1조원을 넘는 이른바 유니콘 기업은 해마다 늘어 2017년 3개에서 2022년에는 22개에 이르렀다. 2023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 박람회(CES)에서 국가별 최고 혁신상은 한국이 9개사로 미국 (4개사), 독일 (2개사), 일본(2개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인공지능(AI), 전기 자동차, 에어모빌리티 등 미래 산업의 최신 경향과 발맞춘 세계적인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세대가 아무런 책임감 없이 미래 세대에게 국가부채를 떠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춰 개선된 노동 환경에 산·학·연이 서로 합심하여 이룬 산업 혁신이 더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우려하고 있는 국가부채 문제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출처 : 전북일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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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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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안의 주치의...더 얆게, 더 가볍게
이원령 KIST 생체재료연구센터 선임연구원 [과학 라운지] 손흥민 선수의 옛 동료이자 친구인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2021년 유로 2020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현재 그는 심장 제세동기를 몸에 이식한 후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심장 제세동기는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거나 부정맥 전조 증상이 있을 때 전기 충격을 가해 맥박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역할을 한다. 심장 이상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도 이식형 전자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세계 최고 축구 리그의 선수로 다시 뛸 수 있는 세상이다. 생체 이식형 전자 의료기기 산업은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로 인한 기업의 이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메드트로닉이라는 심장 제세동기 생산 기업은 연 매출이 300억 달러인데, 순수익이 50억 달러에 이른다. 반도체 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기업이 나올 법한데,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가 없는 것은 재료, 디바이스, 생물실험으로 이어지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매우 긴 시간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투자를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삽입형 전자 의료기기는 실리콘 반도체 기반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부피가 크고 딱딱하다. 실제 제세동기를 삽입한 환자들의 어깨에는 제세동기가 혹처럼 볼록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부피가 큰 의료기기를 체내에 삽입함으로 인해 느끼는 위화감은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 환자들이 삽입형 전자의료기기를 선택하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심장질환뿐만 아니라 당뇨병을 앓는 환자도 생체 이식형 전자 의료기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당뇨병 환자는 혈중 당 농도 관리를 위해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다섯 번 정도 바늘로 피를 뽑아야 한다. 가장 얇은 피부 부위 중 하나인 손끝에서 피를 뽑는데, 손끝은 통각세포가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어 고통이 극심하다. 일제 강점기 일본 형사들의 고문 방식 가운데 손톱 밑을 대나무 바늘로 찌르는 게 있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한 번의 고통으로 오랜 시간 혈당 측정이 가능한 이식형 포도당 센서를 의사가 권유한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할 만하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한 회사가 2주간 지속적으로 혈당 측정이 가능한 삽입형 포도당 센서를 개발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하지만, 높은 가격 외에도 5g 이상의 무게와 피부 부착에 필요한 강력 접착제, 그리고 5㎜ 두께의 바늘 사용으로 인한 알레르기 및 염증 반응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KIST가 개발하고 있는 박막형 생체 이식 전자 의료기기는 앞서 언급한 삽입형 전자 의료기기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미래형 의료기기다. 기존의 실리콘 기반 전자소자에서 벗어나 필름 형태의 박막형 기판에 생체신호 측정에 필요한 전자회로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는 당뇨병 환자들이 반복되는 고통을 겪지 않고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체내 이식형 포도당 센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께는 머리카락의 절반 수준인 5마이크로미터(㎛) 미만, 무게는 깃털 하나보다 가벼운 4㎎의 센서 개발에 성공했다. 앞으로 포도당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의 위험 인자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의료기기로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센서가 측정한 신호를 무선으로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반도체 칩을 집적화한 회로가 필요한데, 이로 인해 센서는 두껍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칩을 사용하지 않고 무선 정보 송신까지 가능한 플랫폼 개발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연구자로서 오랜 기간 박막형 생체이식 전자 의료기기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는 환자가 몸속에 디바이스를 이식한 후에도 이를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이 없는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싶어서다. 얇고 가벼운 박막의 의료기기는 기능적으로도 몸 안에서 이물질에 대한 면역 반응을 최소화해 줄 수 있다. 다양한 질병의 징후를 한꺼번에 측정할 수 있는 삽입형 생체센서는 우리 몸의 이상반응을 즉시 알려줘서 대부분의 질병을 초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의료시스템을 구현해줄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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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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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보스턴의 혁신 생태계
윤석진 KIST 원장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혁신 클러스터인 ‘뉴랩’(New Lab)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과거 미국 해군 조선소였던 네이비 야드(Navy Yard)를 개조한 그곳에서 현대 세계 해전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전함이 건조됐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며 연합국 승리의 상징이 된 미군 전함 미주리호도 거기서 만들어졌다. 미주리호는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 가장 먼저 도착해 굵직한 전투에서 맹활약했고 ‘흥남 철수작전’에도 참여해 대한민국과 인연이 깊은 전함이다. 네이비 야드는 20세기 들어 미국을 세계 패권국으로 만들고 자유 진영을 지켜낸 수많은 전함을 건조한 곳이다. 지금 네이비 야드는 21세기 미국의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해 과학기술로 무장한 첨병들이 태동하는 현장이다. 그런 역동적인 현장을 둘러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서 필자는 특별한 자부심을 느꼈다. KIST의 수소 기술을 기반으로 KIST 출신 한국인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그곳에서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이 기업은 암모니아에서 수소를 뽑아 연료전지로 전력화하는 첨단기술을 드론·트랙터·화물트럭·선박에 확대 적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수소는 경제적·산업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비중이 큰 국가전략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낮은 경제성에 발목 잡혀서 아직 연구실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조금 먼 미래의 기술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미래에 열릴 시장을 연구개발 영역으로 끌고 오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투자자와 산업계가 주목하는 혁신을 창출할 수 있음을 뉴랩의 스타트업은 보여주고 있었다. 뉴욕의 뉴랩에서 북쪽으로 300㎞ 정도 떨어진 보스턴에는 첨단 바이오·의료 혁신클러스터가 자리 잡고 있다. 바이오·의료 기술도 연구실을 벗어나기 어려운 영역이었지만, 보스턴의 혁신적 창업가들은 미래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기업의 요구를 연구 현장으로 끌고 오는 데 성공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역사와 전통의 도시 보스턴은 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를 추월해 세계 최대의 바이오·의료 혁신 도시로 거듭났다. 윤석열 정부는 앞서 언급한 수소와 첨단 바이오를 포함해 반도체·양자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해 이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국가전략기술은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선정됐다. 안정적 공급망 확보와 하락 일변도의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신산업 육성은 물론 국가 외교·안보 관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이와 함께 국가 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컨트롤타워를 정비하는 등 전략기술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뉴욕의 뉴랩과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 요인은 미래시장을 연구개발 영역에 접목해 혁신을 선도하는 시장 메커니즘이다. 이를 통해서 우수 인재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혁신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 우수 인재들은 단순한 보상이나 지위에 움직이지 않고,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있는 곳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아직 열리지 않은 미래 시장을 끌어와 연구에 접목함으로써 전 세계로부터 인재들이 몰려와 경쟁하고, 그들이 만든 최고의 기술이 선택되는 혁신 생태계가 바로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뿌리내린 연구현장을 구현하기 위한 출발점은 인재다. 과학기술 관련 대통령 일정에 과학자들과의 만남이 빠지지 않는 것은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가 과학기술이고, 그 중심에 과학자들이 있다는 메시지가 묻어난다. 정부는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과거 연구기관들이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게 했던 일률적인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폐지했고,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방해하는 ‘모래주머니’를 과감하게 제거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인재들이 마음껏 연구하고, 창의력을 바탕으로 미래시장을 연구현장으로 끌어올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이 이 시대에 부여받은 시대적 사명이라 생각한다. 출처 : 중앙일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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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커뮤니케이션팀
- 작성일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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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역사
김진상 KIST 전북분원장 국제 결제와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를 기축통화라고 한다. 현재 우리 시대의 기축통화는 미국의 달러화(USD)인데,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하게 된 원인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 제1, 2차 세계 대전 중 세계 각국이 보유하던 금이 물자 구매 대금과 배상금 명목으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 결과 종전 당시 미국은 전 세계 금의 70%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금 1온스(oz)를 35달러에 연동시키는 ‘브레튼 우즈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세계 유일 기축통화의 패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수행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크게 늘린 달러 통화량은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금의 가치를 넘어서고 말았고,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여러 국가는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쇄도하는 주변국의 요청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닉슨쇼크). 갑작스런 브레튼 우즈 체제의 종말은 달러가치 저하와 전 세계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무너져가던 미국 달러의 위상은 석유로 인해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공식 계약을 맺는데, 미국이 사우디에 군사력을 제공해주는 대가로 사우디는 원유 거래 결제 수단으로 오직 달러만 취급한다는 내용이었다. 달러가 있어야만 산업 동력의 핵심인 원유를 구매할 수 있으니, 닉슨쇼크로 내재적 가치를 상실한 미국 달러에 대한 수요는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지구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전체 통화량의 21%는 달러이며, 국제 무역 결제 88%가 달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은 자동차 등 다양한 상품을 미국 연방준비은행 (FRB)이 발행하는 달러와 맞교환하여 외환을 비축하고 있다. 즉, 미국은 아무리 달러를 시중에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교역에 사용되는 위안 비중이 급증했다는 사실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反) 달러 패권 세력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러시아 중국 간 원유 교역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일축하는 이들도 있으나, 달러 패권에 심각한 균열을 불러올 장기적인 변화의 한 단면으로 바라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실제로 전 세계 보유 외환 중 미국 달러 표시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대 초반 60% 정도에서 정점을 찍고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처럼 미국 경제 정책의 대척점에 서 있는 국가들은 미국 국채와 같은 달러 자산을 줄이고 금 보유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여러 나라가 달러 이외의 자산에도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재무부 장관인 재닛 옐런은 달러와 연결된 러시아 금융 제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러의 패권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고, 유럽중앙은행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달러의 국제 통화 지위가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물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중국 위안보다 미국 달러는 튼튼하고 투명한 금융시장을 기반으로 하기에 신뢰가 높지만, 한 치 앞도 예상 못 할 정도로 격화되는 미·중 대결의 격랑 속에서 대한민국은 이 통화 전쟁을 면밀히 살피고 현명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전북일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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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커뮤니케이션팀
- 작성일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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