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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 두려움 없는 결정 - 김현우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
- 등록일 :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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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올라 도원수 권율을 돕도록 하라."
명량해전이 있기 한 달 전인 선조가 이순신 장군에게 내린 명이다. 역사를 가정할 순 없겠지만 장군이 이 명을 따랐다면 우리 역사는 어떠했을까. 당연히 명량해전은 없었을 테고 일본군은 안정적인 해상 운송로는 물론 비옥한 호남 농경지대를 확보했을 것이다. 망국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없었으리라 장담하기 힘들다.
사실 선조의 명은 조건문이었다. "지난 칠천량 해전에서 패한 결과로 해전이 불가능할 경우"라는 조건이 있었다.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군사 2만명, 거북선 3척과 판옥선 140여척을 잃으며 궤멸했다. 해전은 중과부적일 것이라는 조정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어쩌면 이순신 장군이었기에 희미한 희망을 품은 명령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령을 받은 이가 장군이 아니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제해권의 중요성을 안다고 하더라도 합리적이면서 본인에게 안전한 명령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장군은 국가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본인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 두려움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일차원적 용맹이나 무모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위험요소를 진심으로 두려워해 적의 동태를 세밀히 살폈고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했다. 준비된 두려움 없는 결정이었다.
현대 기업 경영에서 두려움 없는 결정은 생존과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 특히 독창적 아이디어와 속도로 승부를 봐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더욱 더 그렇다. 하버드대 에이미 에드먼슨은 대부분 사람은 '유감스러운 상황'보다 '안전한 상황'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대부분 직장인은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주저한다. 표준화하고 효율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학습한 결과다.
두려움 없는 결정을 개인의 몫이라며 떠넘길 순 없다. 시대와 사람이 변해도 충무공을 한결같이 존경하는 이유에 전승의 신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고와 의심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두려움 없는 결정을 한 초인이었기 때문이다. 직언하는 부하를 기대하기보다 들어주는 상사가 돼야 한다는 인생 선배의 지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구성원에게 두려움 없는 결정을 요구하기보다 두려움 없는 기업문화라는 필요조건을 충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글엑스(X)는 좋은 사례다. 구글엑스는 자율주행 자동차 웨이모(Waymo), 애드벌룬 인터넷 룬(Loon), 드론 배달 윙(Wing) 등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기술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모든 도전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구글 글래스는 네티즌의 조롱만 남기고 소비자의 무관심 속으로 사라졌다. 바닷물을 연료로 바꾸겠다는 포그혼 프로젝트도 중도에 실패를 선언했다. 구글엑스는 실패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팀원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지급했다. 실패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었다. 안전한 실패를 통해 두려움 없는 결정을 하는 팀원으로 변모시키려는 전략이었다.
연구·개발은 두려움 없는 결정이 가장 필요한 분야다. 2010년부터 연구현장에 성실실패제도가 도입됐다. 연구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성실히 연구를 수행했다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제도다. 특히 올해 초 시행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통해 법제화까지 마쳤다. 개별 연구기관도 두려움 없는 연구문화를 싹 틔우고 성장시켜나가고 있다. 매년 해온 줄세우기식 인사평가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또 도전적 연구라면 과정의 우수성을 평가할 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실패가 없는 연구사업도 시작했다.
기후변화, 초고령화, 미중 패권전쟁까지 대한민국이 마주한 상황이 만만치 않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
424년 전 이순신 장군의 두려움 없는 결정을 이제는 과학기술계가 할 때다.
출처 : 머니투데이(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10213351183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