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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포럼 김홍희사진작가의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2013.03.20)
김홍희 작가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1966년, 대한민국의 두 번째 도시 부산조차도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 다수였다. 바로 그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과학기술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선각자적인 상상력에 김홍희 작가는 놀랐다고 했다. 작가는 상상력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작가에게 ‘패러다임, 패턴, 인식체계, 틀’이라는 말은 상상력을 저해하는 고정관념과 동일한 의미인 것 같았다. 직업의식 vs 윤리 김홍희 작가는 사진을 크게 광고사진, 저널사진, 예술사진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설명했다. 베트남전 종군기자로 참여해 전쟁을 피해 강을 건너는 가족의 저널사진을 찍은 일본인 사진작가는 그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 퓰리처 상의 상금을 그 가족에게 나누어주고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보다는 사진을 찍었다는 비난을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선택했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남아공의 사진작가도 사진을 찍기 전에 굶어 죽어가는 소녀를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는 비난에 자살을 했다. 김홍희 작가는 위험에 빠진 개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그들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전쟁을 멈추는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종군기자 입장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우선하는 가치라는 ‘입장의 철학’을 스승으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그렇지만 김홍희 작가 본인은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사람을 먼저 구할 것이라고 했다. 인식 vs 감상 사진은 논리나 이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감성적으로 느껴야 한다고 했다. 호박, 마차, 유리구두라는 단어를 통해 신데렐라를 연상하듯 기존의 지식과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인식을 한다. 이런 인식체계는 예술사진이나 개인적 영역의 저널리즘 사진을 해석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눈 쌓인 황량한 길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예술사진 한 점을 김홍희 작가가 소개하면서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다. 어떤 이는 ‘외롭다’고, 어떤 이는 ‘희망이 있다’라고 답변했다. 그 예술사진 캡션에는 ‘불빛에게 물었다. 거기가 끝이냐고. 불빛이 답했다. 여기가 시작이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사진을 찍은 작가는 인생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 속의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와 연결시켜서 인식하고자 하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철학 vs 예술 김홍희 작가는 과거의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다비드상’, ‘천지창조’,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작품을 소개했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스킬로 만든 작품들이 과거에는 찬사를 받았지만 현재는 완성도만으로 예술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뜨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눈에 보이는 형상 혹은 이미지는 분명 파이프인데 눈으로 읽는 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텍스트이다. ‘이것’이라고 지칭하는 순간 그 범주와 패러다임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다. 파이프라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전혀 연관관계가 없음에도 동일한 범주 안에서 인식하기에 다른 해석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관습적으로 보고 읽고 인식하는 체계를 뒤틀어서 새로운 해석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 현대예술의 특징이라고 했다. 비트겐슈타인과 소쉬르 같은 철학자는 기호학에서 이것을 규명하기 위해서 두꺼운 철학 서적을 썼지만 예술가는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의 철학 강의 같았다. 김홍희 작가는 까치 담배를 파는 몽골가게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의 삶은 그렇게 한 갑씩 매끈하게 포장되고 말았다”라고 적었다. 이성, 논리, 합리라는 것들이 보고 듣기에는 매끈한 담뱃갑처럼 좋다. 하지만 ‘한 갑’이라는 틀 안에 우리의 인식과 사유체계가 갇히고, 우리의 상상력이 ‘한 갑’이라는 집단에 속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력의 적들에 대한 사주경계가 필요하다.
창의포럼 미술평론가 이주헌(2012.09.19)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알기 위해 미술관련 책도 읽고, 작품과 친해지려고 미술관을 기웃거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미술이다. 어떻게 기성품 변기, 자신의 대변을 넣은 캔(can)이 작품이 되는지 모르겠다.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688만달러에 팔린 ‘오렌지, 레드, 옐로우’(마크 로드코)는 내 눈에는 그냥 3가지 색일 뿐인데 그렇게 고가에 팔릴 정도의 뛰어난 예술작품인지 더더욱 알 수 없다. 미술평론가이자 서울미술관 관장인 이주헌님의 특강을 들으면 이런 의문이 과연 풀릴 수 있을까? 눈의 한계와 미술 이주헌 관장이 우리에게 먼저 보여준 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여러 가지 도형이었다. 우리 눈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착시현상의 예를 들면서 눈이라는 인간의 감각기관이 지닌 한계를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각의 한계가 미술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2차원의 평면임에도 잘 그린 그림은 3차원의 공간감, 입체감,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 그림 속에 꽃잎이 하늘거리는 것처럼 느낀다. 실제 만져보면 2차원 평면에 불과하지만 착시현상 때문에 3차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미술은 인간의 시각적 한계가 가져다준 축복이라고 했다. 내가 본 여인은 오른쪽으로 춤을 추며 도는데 반대로 왼쪽으로 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른쪽으로 돈다고 보는 사람은 우뇌가 왼쪽으로 돈다고 보는 사람은 좌뇌가 활성화 되고 있는 상태라고 추정했다. 눈의 착시현상과 논리‧분석의 좌뇌 , 직관‧이미지의 우뇌 2개, 즉 두개의 뇌를 가진 탓에 사람마다 사물을 다르게 본다. 시각에 의존한 예술인 미술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남과 다르게 보고 진정 '나다워 지는 Original‘이 예술에서의 창의성이다.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 미술은 사기다 관객이 피카소를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 미술이 뭡니까” 피카소가 답했다. “미술은 돈입니다.” 최근 10년간 세계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로 팔린 작품 10개 중에 피카소의 작품이 3편이 올라있으니 “미술은 돈이다”라는 말도 일리 있는 답이다. 피카소가 말한 ‘미술이 돈’이라는 진정한 의미는 위대한 미술작품은 국경과 인종, 문화를 초월한 감동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에게 물었다. “예술은 무엇입니까”. 백남준 선생이 말했다. “예술은 사기입니다.” 예술은 고정관념의 울타리에 갇혀있는 사람, 상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사기처럼 보인다. 백남준 선생의 작품 ‘부처’는 TV를 시청하고 있는 부처의 모습이다. TV위에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촬영-송출- 시청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작품은 불교의 ‘윤회’와 니체의 ’영겁회귀‘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의 창의성 밑바탕에는 한국 사람의 융통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몰입과 놀이 몰입, ‘일을 놀이처럼 즐겨라’라는 말은 과거 창의포럼에서도 많이 등장한 이야기지만 이주헌 관장은 예술의 관점에서 색다른 접근을 했다. 예술에서 몰입은 나를 잊는 무아지경의 경지라 설명했다. 나를 잊는 것은 주위를 의식하는 강박을 벗어나서 나의 기원 'Origin'으로 돌아가서 진정한 나의 꿈, 나의 욕망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몰입을 잘하는 사람은 노는 사람이다. 한국 사람의 놀이감성을 잘 반영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몰입을 통한 예술적 창조는 놀이에 기반을 둘 때 더 폭발력을 지닌다. 아예 사무공간을 놀이터처럼 만들고 직원이 놀이처럼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회사도 있다. 제대로 노는 것은 실패를 즐기고, 그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한‧일 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 히딩크 감독을 인용했다. 자전거 안장과 핸들로 만든 피카소의 ‘황소머리’는 몰입을 통해 발견했고, 투우라는 피카소의 'Origin'으로 돌아가서 창조한 작품이라 했다. 피카소는 황소머리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 안장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중고 자전거를 보는 순간 황소머리가 떠올랐다고 한다. 피카소는 말했다.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한다.” 파괴와 전복 창조를 위해서는 고정화하려는 의식을 틀을 깨야한다. 파괴의 결이 창조의 결이다. 마크 퀸의 ‘셀프’는 조각작품은 돌이나 쇠 같은 고체재료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전복시킨 작가 본인의 피, 액체로 만든 작품이다. 작품을 자화상이라 하지 않고 셀프라고 명명한 것도 자신의 피로 만들었기에 작품자체가 작가 자신인 것이다. 만조니의 ‘세계의 대좌’는 조각을 올려놓는 받침대인 대좌를 땅위에 거꾸로 설치한 작품이다. 거꾸로 놓음으로써 대좌가 지구를 받치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파괴와 전복은 전통과 이념, 도그마에 대한 거부이자 도전이다. 획일화된 일상에 파괴와 전복이 없으면 창조는 생성되지 않는다. 이주헌 관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 것이라고. “미술을 모른다고 감상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지성은 좌뇌의 영역이고 감상은 우뇌의 영역이다. 미술은 느낀 만큼 보이는 것이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느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예술가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감상자에게도 느껴보라고 하는 것이 그림이다.” 청명한 가을이다. 우리의 우뇌를 살찌우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미술관 나들이를 떠나보자.
창의포럼 박경철 원장의 창의의 조건(2013.10.16)
창의포럼 연사로 KIST를 방문한 적이 있는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그의 이름이 기억 속에서 아련해질 무렵 우리나라 지성인들이 좋아하는 고전 중 가장 많은 추천 받은 작품으로 다시 조르바를 접했다. 호기심으로 책을 읽었고 나는 자유의 표상인 조르바에 빠져들고 말았다. 박경철 원장을 문명의 배꼽 그리스로 인도한 것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했다. 의대생 시절 우연하게 그 소설을 읽으며 심장이 타오르는 듯한 일종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창조와 휴머니즘 박경철 원장은 창조는 하늘 아래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 정의하며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창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인간은 육감(경험과 추리로 느끼는 예민한 감각)을 이용하여 변조, 개조, 제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이성과 경험이라는 보편적인 컨센서스에 바탕을 두고 사유를 하기 때문에 신의 영역인 창조적 영감을 획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박경철 원장은 인간의 창조적 행위를 할 때는 영감이 필요하며, 그 영감은 광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성과 경험, 육감을 바탕으로 한 사유로는 절대 영감을 얻을 수 없고 그 틀을 넘어서는 광기가 있어야 영감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광기는 신에 의해 주어진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인 창조에 접근하려는 행위는 신을 숭배하면서도 신에 대항해서 맞서려는 자유의지 즉 휴머니즘이라 했다. 철학적 광기, 종교적 광기 박경철 원장은 광기는 영어로 Crazy와 Madness가 표현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광기는 Madness로 그냥 미친 것이 아니라 경험과 이성의 합리적인 판단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라 정의하며 광기의 종류에는 철학적 광기, 종교적 광기, 예술적 광기가 있다고 했다. 철학적 광기는 생각으로 미치는 것으로 사유의 한계에 저항하며 그 벽을 조금씩 밀어내는 것이라 했다. 수십 년간 없음(無)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사유하는 스님들의 예를 들면서 그런 철학적 광기를 통해 생각의 경계를 넘어서면 이른바 ‘깨쳤다’에 이른다고 했다. 한 영역에서 사유에 영역을 확장하면 다른 영역의 이치까지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깨침의 철학적 광기는 타인과 공유가 불가능한 단점이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종교적 광기는 믿음의 광기이다. 믿음의 광기는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것이며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하는 것이라 했다. 순교자들이 고문을 견디며 목숨을 내놓는 것처럼 믿음의 힘은 어떤 시련과 실패가 있어도 견디는 힘이다. 예술적 광기 박경철 원장은 예술적 광기에서 가장 많은 강연 시간을 할애했다. 예술가의 광기는 타고 나는 것이라 했다. 예술적 광기가 없는 사람이 학습을 통해 기교만 배워서 예술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했다. 꿈은 인간이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인데, 예술가는 그 자유인 꿈을 현실화 시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성과 경험의 포로인 일반인에게는 현실과 꿈이 정확히 구분되지만 예술적 광기를 지닌 사람은 꿈도 현실일 수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도 모든 갈등이 치유되는 평화로운 낙원세계를 꿈에서 경험한 후 작곡한 작품이라 했다. 예술가의 광기는 현실세계와 영감의 세계로 진입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우리는 예술적 광기의 결과물인 시와, 음악, 미술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영감을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박경철 원장은 예술을 늘 가까이 하라는 말과 함께 영감을 체득할 수 있는 감상법을 제시했다. 쇼핑하듯 스쳐가는 미술관 투어가 아니라 잭슨 폴락의 낙서처럼 보이는 작품을 2시간 이상 몰입하면서 감상할 때 작가의 예술적 광기를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자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절대자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의지인 휴머니즘도 결국 인간 본성인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다. 박경철 원장이 말하는 광기도 이성과 경험이라는 지식인의 저울로부터 탈피하려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단풍이 짙어지는 가을에 다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야겠다. 나는 자유다.
창의포럼 박범신 작가의 부족함과 그리움의 미학(2013.11.20)
소설 ‘은교’를 보고 박범신 작가를 창의포럼에 초대하고 싶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그가 내게 한 말은 ‘저 강의 잘 안 합니다’였다. 이듬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세 번째 다른 이가 연락을 해서 그를 겨우 KIST로 모실 수 있었다. 박범신 작가는 40권을 소설을 썼지만 똑같은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은교’에서 쓴 문장을 ‘소금’에 절대 쓰지 않는다고 했다.(박범신 작가는 이것을 ‘소금의 문장으로 은교를 엿 먹인다’라 했다.). 강연에서는 새문장이 아닌 어디서 했던 말을, 책에서 썼던 말을 반복하는 약장사처럼 보일까봐 강의를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성작가로는 처음으로 소설 ‘촐라체’를 포털에 연재했고, 좋은 소설을 위한 내적충전과 긴장을 위해 고향으로 귀향하며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청년작가 박범신에게 반복되는 주제의 강연은 탐탁지 않은 청탁 이였을 것이다. 박범신의 삽화 박범신 작가는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인문학적인 KIST의 환경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단시간에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KIST 과학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성장이 가난을 해결해 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압축적 고도성장이 수반한 수많은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고통이었다고 했다. 박범신은 부족함과 그리움의 미학을 자신의 어릴 적 삽화 두 장면으로 설명했다. 중학생 박범신은 20리 들길을 걸어서 통학했다. 학교를 마치고 주린 배를 부여잡고 걷던 강경의 황금들녘은 부족하거나 빈 것이 없는 충만한 곳, 완전한 세계였다. 소설의 ‘은교’도 단순한 어린 여고생이 아니라 강경의 들녘처럼 불멸의 완전함과 조금도 억압이 없는 완전한 아름다움이라 했다. 반면 들길을 걷고 있는 박범신은 결핍하고 부족한 실존이라 했다. 두 번째 삽화는 박범신의 가족이야기다. 장사를 하러 집을 비운 아버지 대신 가정을 책임져야 했기에 늘 날카로웠던 어머니, 방 두칸 좁은 집에서 예민한 어머니와 4명의 누나간의 불화로 박범신의 집안은 평안한 날이 없었다. 처마 밑 굴뚝에서 집안의 다툼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리던 박범신에게 창호지 은은한 불빛을 통해 전해지는 옆집 가족의 웃는 소리는 그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운 세계였다. 박범신이 등지고 있는 굴뚝은 자신의 실존이자 결핍의 세계였고, 눈으로 접한 세계는 본인이 너무나 가고 싶은 세계였다고 했다. 문학과 상상력 박범신은 부족함과 결핍의 세계와 가고 싶은 세계 사이의 거리를 재보고, 손을 내밀어 서로 소통의 길을 찾는 것이 소설가의 책무라고 했다. 근대화 시기의 과학자들도 경제성장이라는 지시받은 과업에 충실해서 성공의 동력을 제공했다가 보다는 결핍과 부족함의 경험, 그리고 그리운 세계와 충만에 대한 내적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범신은 작가의 상상력은 안락, 행복, 안정이라는 환경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내적으로 긴장하고, 예민하고, 부족하고, 불안하고, 추락과 상승,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상상력이 샘솟는 다고 했다. 이런 상상력의 내적 조건은 과학자도 마찬가지라 했다. 내적 불안감과 긴장이 최고의 예술작품을 만든다며 베토벤과 고흐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행복이란? 박범신이 자신의 신을 찾아서, 작가의 내적 에너지를 찾아서 자주 방문하는 희말라야에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다. 부탄은 GNP가 2천불에 불과하지만 국민의 행복지수가 97%에 이른다고 했다. 소득이 낮고 복지수준도 낮지만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부족함 속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부탄은 고아들이 생기면 마을의 좀 부유한 집에서 책임지고, 마을에 부유한 집이 없다면 종교기관이 돌본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아름다운 노력이 부탄의 행복함의 원천이라 했다. 국민소득 2만불의 대한민국은 부모를 버리고 있다. 가난과 결핍을 극복하고자 생산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가치를 모두 버렸다고 했다. 박범신은 잘살고 싶은 욕망, 명품을 가지고 싶은 욕망을 자본주의가 주입한 바이러스라고 했다. 박범신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지배하는 생산성을 버리고 내면의 나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생산성과 세상이 우리에게 행복에 대한 열망, 사랑에 대한 열망, 신성(神聖)에 대한 열망을 버리라고 강요한다. 이름 모를 풀꽃을 보고도 울컥하는 내 마음에 신성은 생산성에 걸림돌이기 때문에 세상은 신성에 대한 욕망을 버리라고 한다. 박범신은 이런 생산성에 저항하고 행복을 완성하고 유지하려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자신 내면의 신성을 찾으려는 초월적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주입한 생산성의 노예, 욕망의 바이러스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과학적 사고로 현상만 보지 말고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경이로움을 보려는 초월적인 영혼의 열망이 있는 삶이 품위가 있는 삶이라 했다. 박범신은 상상력은 순정을 유지하고, 상처받기 좋은 상태에서 나온다고 했다. 과학자의 상상력 제고를 위해 자신과 같이 껄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으라고 했다. 일흔이 다된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위해, 청년의 순정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한 성찰을 하고 있는데 불혹을 갓 넘긴 나는 성과와 효율성의 굴레 갇혀 껍데기만 청년이 아닌지 자문해 본다.
창의포럼 박철순 회장의 도전 그리고 열정(2014.08.27)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뉴욕 양키즈의 ‘영원한 캡틴’ 데릭 지터는 아웃이 예상되는 내야땅볼타구를 치고도 1루에 전력질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하루에 3시간 정도 일하는 야구선수에게 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00%로 뛰는 건 어렵지 않다. 단지 노력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지터는 아프지만 팀을 위해서 뛴다는 말은 거짓이라 했다. 지터는 야구선수에겐 아프다와 아프지 않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기에서 뛸 수 있느냐와 없느냐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십 수 년이 흘렀지만 야구에 대한 철학만큼은 데릭 지터를 능가할 불사조 박철순이 KIST를 방문했다. 유니폼이 소중했다 박철순은 마운드에 등판하는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며 말문을 열었다. 중학교 때 키가 너무 작아서 야구를 그만두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 때도 공이 빠른 것 말고는 그저 그런 선수였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유니폼이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다고 했다. 군대 야구팀에서 기량이 급성장해서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그 계기로 미국 프로야구로 진출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한국에는 프로야구가 없었고, 미국에 진출해서 성공하지 못할 경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박철순은 자신의 미국진출을 목숨을 건 도전이라고 했다. 자신이 뛰었던 미국구단은 실력이 미달된 선수에겐 라커룸에 훈련수당과 비행기 티켓을 넣은 노란봉투 2장으로 퇴출시켰다. 박철순은 늘 긴장된 마음으로 신중하게 라커룸 문을 열었다고 지난날을 소회했다. 마이너리그 최초 등판의 경험,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미국 마이너리그에서의 재활경험, 그리고 마이너리그 트리플 A까지 진출했던 이야기를 했다. 불사조 박철순 박철순의 계약조건은 1982년 상반기까지 미국 메이저리그에 등판할 수 없을 경우 일본 프로야구 구단으로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한국에 프로야구가 창설되었고 박철순은 당시 OB베어스의 입단 제의를 받고 국내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프로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다. 그해 박철순은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불멸의 22연승을 기록하며 소속팀 OB베어스를 원년 우승으로 이끈다. 만약 그의 야구인생이 여기서 멈췄다면 우리는 박철순을 그냥 야구 잘 하는 투수정도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1982년 후반기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에 박철순은 선발로 등판해 상대타자의 번트수비를 하다 허리를 삐끗했다고 했다. 사실 그해 OB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진통제를 맞으며 등판을 강행한 박철순의 투혼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유증으로 결국 그는 허리수술을 받고 길고긴 재활에 돌입하게 된다. 박철순의 수술을 집도했던 미국 주치의는 3년 만에 퇴원하는 박철순에게 ‘앞으로 걸을 수 없다’라고 말했지만 걷고 안 걷고는 나에게 달렸다는 말을 남긴 뒤 뼈를 깎는 재활 끝에 그라운드로 복귀한다. 그러나 복귀 후 광고 촬영 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한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을 주시냐!’며 신을 원망해 보기도 했지만 다시 긴 재활을 시작한다. 걷기 훈련을 위해 365일 중 362일 골프장을 찾았고, 걷게 되자 다시 뜀박질을 하고 그라운드로 박철순은 불사조처럼 돌아왔다. 야구공을 던진 것이 아니라 혼을 던졌다 박철순은 고통스러운 재활을 언급하는 이유를 운동쟁이(박철순은 본인을 낮춰 그렇게 불렀다.)인 자신도 이렇게 아픔을 극복했으니 훌륭한 연구자들이 고통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본인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견디라고 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힘든 일을 겪다보면 흐트러지고 나약해질 수 있는데 진정한 인내는 그런 참을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라 했다. 자신이 남들보다 정신력이 뛰어나서 재기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투수라는 자신의 직분,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철순이 방송 인터뷰에서 ‘야구공을 던진 것이 아니라 혼을 던졌다’고 한 적이 있다. ‘이제 박철순은 끝났다’라는 주변의 평가에도 그는 등번호 ‘21’번 유니폼을 입고 다시 마운드에 섰다. 박철순에게 투구 한구 한구는 단순한 야구공이 아니라 불사조처럼 재기에 성공한 본인의 혼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마운드는 어떤 의미였을까? 현대의학도 불가능하리라 판단했던 재활에 초인적 의지를 보여준 것도 마운드에 다시 서고 싶은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운동선수든 연구자든 어떤 직업인이듯 업에 대한 진정한 절실함이 있다면 그 분야에서 박철순과 같은 이름 석 자를 남길 수 있으리라.
창의포럼 봉준호 감독의 창의적인 충동과 그 두려움에 관하여(2013.12.18)
‘설국열차’ 후속 작품을 촬영 중인 봉준호 감독은 매우 지쳐보였다. 방전된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 강의할 에너지가 과연 있을까 염려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강연 첫 음성을 듣고는 나의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봉감독은 자신이 정해준 강연제목 ‘창의적인 충동과 그 두려움에 관하여’는 즉흥적인 것이었고, 강연내용은 이와 무관하다며 청중들의 폭소를 유발했다. 기억, 새로운 시선, 영화 봉준호 감독은 본인의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구상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옆에 있는 사람, 혹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광기(?)를 느낀다고 했다. 좋은 시나리오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이 오늘의 봉준호 감독을 만든 원천일 것이다. 일반인에게 기억은 그냥 흘러간 추억이지만 봉감독에게 기억은 새로운 시각이자 영화를 풀어나가는 핵심 포인트다.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설국열차도 봉감독이 어릴 적 즐겨본 ‘은하철도 999’에서 본 그 기차에 대한 봉감독의 로망이 담겨져 있다. 대학시절 오대산 주차장에서 봉감독은 산행을 마다하고 좁은 관광버스 안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줌마들을 목격한다. 좋은 대자연을 앞에 두고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아줌마들이 대학생 봉준호의 뇌리 속에는 충격의 잔영으로 있었다. 모처럼의 소중한 여행에서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우리네 서민 아줌마들은 관광버스 이동시간마저도 놀이의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서글픈 사연을 인지한 영화감독 봉준호는 대학시절 아련한 기억을 주저 없이 영화 마더의 라스트 씬으로 옮겼다. 영화 괴물도 고등학교 시절 한강변 아파트에서 검은 물체가 잠실대교에 매달려 있다가 빠지는 모습을 본 것이 시나리오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억과 사물을 보는 다른 시선은 오롯이 그의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과학, 예술, 그리고 배우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최근작품 설국열차 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판타지 영화가 아닌 SF영화이기 때문에 17년간 달릴 수 있는 기차와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관객들에게 최소한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17년간 연료를 주입하지 않고 달리는 열차의 동력장치는 핵잠수함의 핵융합 원자로를 상정한 것이라 했다. 과학기술은 이처럼 영화의 내용을 채우는 모티브가 되기도 하지만 영화라는 예술을 구성하는 필수요소로 작용한다. 최첨단 하이테크 장비와 모션 캡쳐, 컴퓨터 그래픽 등이 없다면 영화 ‘아바타’와 ‘반지의 제왕’도 그처럼 생생한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장르인 영화에서 절대 대체 불가능한 것이 바로 배우라고 했다. 영화감독, 영화스텝은 5년 동안 실미도 같은 섬에서 열심히 교육훈련 시키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송강호나 김혜자 같은 명배우는 타고난 DNA가 없으면 할 수 없다 했다. 배역에 몰입해서 빙의된 듯 광기어린 연기를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 극중 본인의 연기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고 그 누가 대체할 수 도 없다고 했다. 디테일과 리더십 봉준호 감독은 영화촬영장을 질퍽거리는 땅, 거대한 장비, 그 장비를 연결하는 무수한 전선들, 스텝과 배우들이 뒤엉켜있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공간이라 했다. 그 아름답지 못한 공간의 최고 의사결정자가 바로 감독이다.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함께한 배우나 스텝은 하나같이 봉준호 감독의 리더십을 칭송한다. 설국열차의 주인공 크리스 에반스도 봉준호를 ‘촬영 현장의 모든 답을 갖고 있는 현자’라고 그를 추켜 세웠다. 강연 말미에 봉감독이 언급한 영화 마더의 마지막 장면 ‘관광버스’촬영 후일담을 듣고 왜 그의 리더십을 칭송하는지 머리가 끄덕여졌다. 봉감독은 스텝들에게 관광버스 씬의 촬영원칙을 제시했다. 그 원칙은 첫째 컴퓨터 그래픽을 쓰지 않고, 둘째 실제 달리는 버스를 촬영하고, 셋째 태양광선이 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스와 촬영차량이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도로, 태양광선이 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할 때의 정확한 시점 등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있었지만 스텝들은 봉감독의촬영원칙을 수긍하고 최적의 장소를 물색했고 결국 촬영에 성공했다. 좋은 작품을 위한 세밀함, 용의주도함, 그리고 그 바닥에 깔린 감독의 창의성은 배우와 스텝이 봉감독을 지지하는 힘일 것이다. 배우와 스텝의 감독에 대한 자발적 동의가 없다면 봉감독이 추구하는 디테일은 결코 그들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봉감독이 영화 마더의 마지막 장면을 틀고 객석으로 돌아와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본인이 계획한 대로 최상의 영상을 만들어낸 것이 지금도 감독 자신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인 듯 했다. 올 초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은 특강에서 5분이 넘는 서편제 진도아리랑의 롱테이크 장면을 신이 돕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영상이라 했다. 감독도 봉준호 감독이 말한 배우처럼 광기가 있어야 관객을 감동시키는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과학자도 광기와 같은 열정이 있는 것 아니냐며 언젠가 그런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창의포럼 서희태 감독 (2012.08.29)
창의포럼 연사를 중 특히 예술분야의 초청강사들은 대면한 첫 느낌은 ‘새로움’이다. 그들이 착용한 복장과 그들의 직업적인 이미지가 연사의 첫인상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그를 음악감독, 지휘자로 인식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예술인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에 손에 이끌려 시작하게 된 음악이지만 결국 아버지를 뜻을 거스르고 음악인을 걷게 되었다고 했다. 대학시절 우연히 베토벤 합창교향곡 1악장을 듣고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서희태 감독은 강연 내내 음악보다는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오케스트라와 기업경영 ‘미래의 기업은 심포니오케스트라와 같은 조직을 닮아 갈 것이다’라는 경영학의 대가 피트 드러커의 말을 인용하며 서희태 감독은 강연을 시작했다. 많게는 천명이 넘는 연주자가 모여서 서로 다른 악기를 사용하여 조화와 협력을 통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가 현대의 회사조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다양한 구성원과 각기 다른 음색을 지닌 악기를 하나의 화음으로 모아내서 최상의 연주를 만들어 내는 지휘자도 기업의 CEO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불확실하고 복잡한 시대에 다양한 사람(단원), 다양한 마인드(악기)를 가진 복잡한 기업이라고 서희태 감독은 정의했다. 배려의 리더십 오케스트라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내지 않는 지휘자는 음악활동에서는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협연자를 선택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권한을 가진 만큼 협연자가 최상의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지휘자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서희태 감독은 주빈 메타가 오페라 공연에서 본인이 선택한 협연자의 컨디션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협연자인 테너가 최고의 음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중단한 사례를 들면서 지휘자의 배려하는 리더십에 대해 설명했다. 지휘자의 배려리더십은 연주자들로부터 신뢰를 획득하는 기본이다. 배려의 리더십을 실천한 주빈 메타도 있었지만 공연에서 본인만 돋보이게 하고 연주자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하지 않은 이탈리아 지휘자는 음악감독 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고 한다. 칭찬과 재미 그리고 창의성 유명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프로 중의 프로다. 그런 프로들에게 연 주시 늘 지휘자만 바라보게 만들고 명확한 지시와 간섭을 하게 되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자들이 서로 들으면서 연주하는 앙상블이 되지 않는다. 지휘자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정신적 압박 속에서 연주자 스스로의 창의적 연주를 생각해내게 만든 베를린 필하모니의 종신 지휘자 카라얀은 권한 위임을 통해 훌륭한 연주를 만들어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연주가 중단된 아주 짧은 시간동안 악기를 돌리면서 연주자 스스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재미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지휘자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신예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다. 서희태 감독이 마지막으로 소개한 리더십 장르는 칭찬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 연주자를 신명나게 한다. 지휘봉을 움직이지도 않고 흐뭇한 미소와 눈빛으로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번스타인의 모습은 최상의 칭찬리더십 교과서였다. 포디움과 리더 포디움은 지휘자가 올라서서 연주하는 단이다. 지휘자가 포디움에 올라가는 이유는 떠오르는 소리의 성질 때문에 높은 위치에 있어야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고, 연주자와 관객을 더 잘 보기 위해서란다. 포디움에 서있는 지휘자는 전체 공연에 구성하고 있는 음악, 연주가, 관객이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이다. 포디움이 자리하고 있는 돋보이고 높다는 물리적 위치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본인의 존재감만 과시한다면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화음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극도의 근시였던 토스카니니는 음악 악보를 모두 외웠다고 한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후대의 우리는 그를 위대한 Maestro로 기억하고 있다. 우린 이미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다. 피로를 풀어주는 음악이라며 서희태 감독이 추천한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C장조 Op.48 2악장 ‘왈츠’, 출처:클래식 경영콘서트)를 들으면서 지독히 무더운 올해 여름을 이겨낸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자.
창의포럼 송길영 사장의 빅데이터, 욕망을 읽다(2014.03.19)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빅데이터는 양이 엄청나고(Volume), 속도도 빨라야 하며(Velocity), 여기에 다양성도 있어야(Variety) 하는 소위 ‘3V’로 정의된다. 기업이나 개인이 빅데이터에 주목하는 이유는 데이터 속에 담겨져 있는 사람의 마음, 욕망을 읽어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함이다. 모 일간지에 최근 빅데이터의 배신이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최근 2년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구글이 제공한 독감예측이 실제 결과와 동떨어졌다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었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극소수 검색어만 임의적으로 추출하여 분석한 빅데이터의 자만심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전문가는 오류의 원인을 지적했다. 빅 데이터는 재료에 불과하고 실제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읽는 능력(Data literacy)이라고 한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의 강연내용도 이와 상통하는 것 같다. 데이터에서 욕망을 읽다 송길영 부사장은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사회현상의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고, 인과관계를 알아야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뉴욕의 범죄감소 이유는 경제성장이나 강력한 치안정책이 아니라 1973년의 낙태 합법화로 범죄환경에서 자라는 아이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길영 부사장 본인은 데이터를 통해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실제사례로 추석 후 증가하는 이혼율과 백화점 명품 매출증가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했다. 추석이 되면 한 달 전부터 엄마의 스트레스가 증가하여 명절 2일 전에 폭발한다고 했다. 추석 후에도 엄마의 불쾌감은 1주일 이상 지속되고 한 달이 지나야 원래 감정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백화점 명품 매출증가는 이런 엄마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이고, 이혼의 증가는 명절을 둘러싼 부부간의 갈등이 원인이라고 했다. 송길영 부사장은 명절로 인해 증가하는 이혼을 막는 방법은 아내의 스트레스 주기를 살펴서 조심하는 것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명절을 보내는 방식을 혁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송길영 부사장은 일상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직장인의 욕망을 커피를 통해 설명했다. 직장인들은 하루 3번의 커피를 마시는데 아침의 모닝커피는 숙취해소를 위해, 점심의 유명커피 전문점의 테이크아웃 커피는 ‘나 아직 살아있다’는 위안을 위한 것이고, 오후 4시경의 커피는 상사의 뒷담화를 위한 스트레스 해소용이라 했다. 욕망해결을 위한 선택과 집중 송길영 부사장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업의 성공사례를 소개했다. 한 제약회사에서 붓고, 멍들고, 벌레에 물렸을 때 바르는 연고를 개발했다. 이미 타사의 연고가 시장점유율이 높아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송길영 부사장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다른 기능은 버리고 ‘멍’ 치료분야에 집중했다. ‘멍’이 있으면 가정폭력이 연상되기 때문에 화장이나 옷으로 감추는 여성들을 주 고객으로 삼아 여성지에 집중적으로 광고했다. 옷으로 가리면 되는 겨울에는 성형시장을 겨냥해서 무색무취해서 얼굴에도 바를 수 있다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연고의 매출은 464%나 증가했다고 했다. 송길영 부사장이 언급한 또 하나의 사례는 차세대 저장장치(Solid state Drive) 관련이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차세대 저장장치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부팅을 신속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기업은 이 기능을 강조해서 홍보했고 1년 만에 시장점유율 꼴찌에서 1등으로 올라선 것이다. 고객이 욕망하는 것을 해결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면 판매는 저절로 따라 온다고 했다. 인간의 욕구(Needs)를 욕망(Desire)으로 바꾸는 것이 본인의 임무라 했다. 기억할 수도 없는 긴 상품명, 백화점 식으로 나열된 제품의 기능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일상 속에 숨겨진 욕망해결을 위한 선택과 집중이 제품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R&D 송길영 부사장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면 그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R&D연구비가 줄어들면 연구소는 과감한 개혁을 해야 한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R&D의 방향도 데이터 분석처럼 명확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R&D를 하라는 것이다. 최첨단 기술력으로 혼을 담아 ‘절대 리모컨’을 만들어도 아무도 그 리모컨을 사용하지 않는다. 리모컨에는 단순한 몇 가지 기능만 있으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데 기술을 너무 많이 담으면 망한다고 했다.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에서도 기술을 빼면서 기업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했다. 경쟁자를 보지 말고 소비자를 보고 그들의 욕망을 분석하고, 그 욕망을 현실화 시키는 기술을 만들면 사람들은 행복해 진다고 했다.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기술을 만드는 것, 기술의 지향점은 곧 인간이라고 했다. 송길영 부사장은 고도를 높여 남들보다 반보 앞을 보면서 통찰력을 가지라 했다. 스티브 잡스의 ‘Think different’도 이와 유사한 개념일 것이다. 사유의 집중점은 인간이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근본적인 이유(Underlying reason)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해야만 하는’연구의 출발점도 바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창의포럼 승효상 건축가의 땅과 건축(2014.05.21)
빌딩과 아파트로 획일화된 개발도시 서울에서 한옥지킴이를 자처한 외국인들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개발업자들에게 소송과 물리적 시련을 당하면서도 한옥을 보존하려는 푸른 눈의 외국인을 보고 있노라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중세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는 유럽의 도시들과 600년 고도(古都)의 흔적을 궁궐에서만 찾을 수 있는 우리의 서울을 비교할 때마다 서글퍼진다. 터무니 5월 창의포럼 강사인 승효상 선생은 사람에게도 지문이 있듯 땅에도 고유한 무늬인 터무니가 있다고 했다. 그는 땅이 가진 고유한 무늬를 밝혀내고,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곳에 맞는 건축을 해야 한다고 했다. 건축을 부동산과 같은 축재의 수단으로 삼아 산을 갈아엎고 계곡을 메우는 행위는 인간존엄성에 대한 배신이며 범죄적 행위라고 했다. 건축을 공학과 예술로 이해하는 것은 협소한 해석이며 그 본질은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라 했다. 건축설계는 공간구성을 통해 다른 사람의 행위와 삶을 조직하는 것이기에 결국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인문학이라 했다. 우리 선조들은 땅, 자연과 교감하며 그곳에 맞는 건축을 했는데 지금의 우리는 터무니없는 개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스터플랜과 개발 미래를 위한 꿈같은 도시라 칭송받았던 세인트루이스의 계획도시는 인종, 부자와 가난한 자, 공공과 개인의 영역을 분리해서 건설되었다. 분리된 도시에 범죄가 횡행하면서 슬럼화 되고, 이로인해 도시는 결국 파괴되고 말았다. 승효상 선생은 이를 모더니즘 건축의 종말이자 마스터플랜의 폐기라고 했다. 그 실패한 마스터플랜이 우리나라 계획도시의 절대적인 교본이라 했다. 상업지구, 도심, 부도심 등 용도에 따라 다른 색깔이 칠해지고 위계적 질서의 계급도시가 만들어졌다. 색깔이 나타내는 것은 개발에 대한 인간의 욕망 즉 땅값이다. 그곳에 거주하는 우리는 잘못 만들어진 도시구조로 인해 소통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대립하며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마천루와 지배자 중심의 개발 직립보행하는 인간이 중력에서 벗어나 땅에서 떨어지려는 욕망이 빚어낸 건축물이 마천루(Skyscraper)이다. 승효상 선생은 마천루라는 단어 뜻 자체도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하늘을 닦는 집’이라했다. 높은 건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동양에서는 탑으로 서양에서는 고딕양식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높이에 대한 인간의 욕망만큼 오래된 것이 바로 중심과 지배에 대한 욕망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성베드로 성당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돔의 하부는 교황이 거쳐하는 곳으로 중심을 움켜진 자가 공간을 지배한다는 사상을 잘 보여 준다고 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보아도 성주가 거주하는 이상도시 중앙을 계급적 위계질서로 방어하는 기하학적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권력자와 지배자가 중심에 군림하는 완벽한 위계를 바탕으로 도시와 도로가 설계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담은 서양도시의 원전이었다. 빈자의 미학, 비움과 공유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빈자의 미학)을 실천하는 승효상 선생이 말하는 좋은 건축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배제한 비움과 공유였다. 승효상 선생이 말한 비움을 대표하는 것이 우리의 마당이다. 중동의 중정(中庭)은 날씨 때문에 만들었고, 중국의 중정은 계급적 질서 때문에, 일본의 중정은 단지 감상을 위해 만들었지만 우리나라의 중정인 마당은 비움과 채움이 반복되는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노동하고, 잔치를 벌이고, 제사지내고, 놀이하고, 교육하는 행위가 끝나면 다시 비워져서 생각을 위한 사유의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세계의 건축가들이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종묘’에 있는 월대 또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에너지가 충만한 비움의 공간이라 했다. 승효상 선생이 말하는 건축에서의 공유란 삶의 공동체를 위해 서로 나누는 것이라 했다. 아랫 집의 지붕이 윗집의 테라스가 되고, 옆집과 벽을 공유하고, 집 밖의 공간은 공동체를 위한 이동의 공간이 되고, 쉼터가 되고, 시장이 된다고 했다.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에게해의 그리스 산토리니도 이런 모습이었고,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의 달동네도 이런 모습이라 했다. 산토리니는 지금도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지만 우리의 달동네는 개발이라는 테러로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승효상 선생은 철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인용하면서 ‘지식인은 자기 스스로를 경계 밖으로 추방해서 잘못된 제도와 싸우는 사람’이라 했다. 박제된 이론의 도그마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 밖을 지향하는 연구자의 자세, 진정한 노마디즘의 실천가를 그려본다.
창의포럼 시인 신경림(2012.11.14)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소설을 잡문이라 폄훼하며 평생 시만을 고집하는 늙은 시인이 등장한다. 그 시인은 본인의 쓴 소설마저도 제자의 이름으로 발표한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으로 유명한 대하소설가 조정래 선생도 시를 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부인 김초혜 시인을 ‘떠받들고’산다고 한다. 문학에 등급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가 이렇게 존귀하게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시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난한 조국의 시인 신경림 시인이 ‘갈대’로 등단한 1956년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이었다. ‘절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대한민국’이라는 외국잡지 기자의 말에 울분을 토하면서도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조국에서 갈대와 같은 서정시를 쓰는 것은 진정 옳은 일인지 시인은 묻고 또 물었다. 답을 찾지 못한 시인은 낙향했고 거의 10년간 작품활동을 중단했다. 신경림 선생은 시는 우리 삶의 모습과 정서가 표현되어야 하고,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때 감동을 주는 것이라며 본인의 시론을 폈다. 이런 시론을 대변하듯 신경림 시인이 이후 발표한 ‘농무’같은 작품은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사회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한 시들이 주를 이룬다. 시는 힘 있는 이미지다 시인이 현실을 비판하는 시를 쓰자 많은 이들이 현실참여시 대열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시인의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시가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적․역사적 상상력만 있으면 재미있는 시라 할 수 있는가? 18세기 문어로만 썼던 시를 구어체로 쓰면서 시작의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던 워즈워스를 예를 들면서 신경림 시인은 시는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그것을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여야 한다고 했다. 시가 이미지로 전달될 때 시가 시다워진다.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산문 쟁이 소설가들이 시인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이미지를 압축적이고 간결한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당나라 시인 왕유가 ‘시는 글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했다는데 시인의 설명을 들으니 그 말이 또렷해진다. 신경림 시인은 시가 시다워 지려면 이미지에 덧붙여 시인의 생각을 힘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시의 언어는 시인의 자존감이기도 하기에 유약하기보다는 힘 있는 언어가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고 했다. 첫 느낌과 말의 재미 시가 앞의 두 가지 조건을 만족했다 해도 남들이 이미 경험한 것, 표현한 것으로 시를 쓰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걸을 보고,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고, 만지지 못한 것을 만질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시인은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느낌을 새롭게 표현해야만 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띠고 있다. 신경림 선생은 좋은 시가 갖추어야할 마지막 조건으로 우리 말의 맛을 제대로 살려야한다고 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익숙한 말을 시적언어로 잘 구사해야 좋은 시를 만들 수 있다. 김소월과 서정주가 우리 말을 시어로 가장 잘 구사한 시인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서 배운 말들이 좋은 시어의 밑바탕이라고 했다. 아마도 어머니가 자식에게 전달하는 언어에 자애로움과 순수함이 담겨 있기에 최적의 시어가 아닐까. 항상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 과학자와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표현해야만 하는 시인은 공통점이 많다. 시인은 연구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시를 읽으면서 풀어보라고 권했다. 퇴근길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쓰여있는 시를 보며 시인이 느낀 그 감정을 공유하며 감동받은 적이 있다. 업무에 몰두하다 가끔 창밖을 보며 찰나의 휴식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듯 늦가을에 시집 한권이 삶의 청량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