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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한 연구 ‘세계 최초’ 썼다...베일 쌓인 신소재 비밀 규명
- 등록일 : 22-03-23
- 조회수 : 3938
천동원 박사 ‘준 안정상 신소재 개발 방법론’ 과학적 제시
감으로 진행됐던 연구 과학적 규명
”연구자 필요에 따른 재료 개발 도움 될 것”
KIST의 한 실험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 크기의 연구 장비가 시선을 끈다. 고개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야 볼 수 있는 커다란 원통모양의 이 장비의 이름은 투과전자현미경이다. 눈으로 원자를 직접 관찰할 수 있어 나노물질의 구조분석이나 저분자량 단백질의 구조규명 등 소재개발에 필요한 핵심 물성을 규명하는데 사용된다.
물질을 관찰하고 분석하는데 주로 사용하는 이 현미경을 ‘신소재 개발 플랫폼’으로 활용하면서 남들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하는 팀이 있다. 천동원 KIST 에너지소재연구센터 박사팀이다.
천 박사팀은 투과전자현미경 장비를 이용해 일반 합성 장비에서 실현 불가능한 독특한 소재합성 분위기를 만들고, 소재 성장과정을 세세하게 관찰해 새로운 신소재를 개발하고 생성원리도 규명한다.
천 박사는 최근 이 같은 연구를 통해 에너지신소재개발에 적용할 수 있는 신개념 준 안정상 합성방법론을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몸에 좋긴한데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건강식품처럼, 만들어지기는 하는데 이론 제시가 어려웠던 준 안정상 신소재 개발 방법론을 과학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는 Nature 최신호에 게재됐다.
만들어지긴 만들어지는데 왜? 규명하기 어려운 이론 제시하다
천 박사는 친환경 미래형 에너지로 주목받는 수소의 저장 및 활용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초 연구를 하고 있다. KIST는 1987년부터 수소 생산 및 화학적 운송 저장, 수소연료전지 등 전주기 수소 기술 연구 개발의 오랜 역사를 가졌다. 하지만 여전히 수소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천 박사에 따르면 원자번호 1번인 수소는 양성자와 전자를 하나씩 갖는다. 수소가 금속 내부에 들어가게 되면, 많은 전자를 갖고 있는 금속과 수소가 전자를 공유하게 된다. 마치 거대한 산 위에 바위 하나가 놓인 것처럼, 금속 내부에 존재하는 수소의 거동을 직접 관찰하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수소의 저장이나 활용 등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처럼 수소의 거동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렵다보니 많은 연구자의 직관, 경험으로 진행 돼왔다. 직관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천 박사의 연구과제이다.
연구자의 직관, 경험적인 방법론에 의존해 진행되는 또 다른 연구가 있다. 준 안정상 신소재 개발연구다. 예를 들어 높은 압력환경에서 생성되는 다이아몬드는 우리가 사는 상온 상압 환경에서 준안정상인 반면에, 같은 탄소로 구성되는 흑연은 안정상이라 부른다. 같은 원소로 구성된 소재임에도 확연하게 구별되는 물성을 갖는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예처럼, 준안정상을 통해 새로운 성능을 갖는 소재개발이 가능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주제이다.
특히 소재의 크기가 매우 작은 나노스케일에서는 기존 연구나 경험을 기반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준안정상의 형성이 가능한데, 형성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천 박사팀은 준안정 금속수소화물 개발을 통해 과학적인 근거와 이론 제시가 어려웠던 나노스케일의 준 안정상 소재의 형성원리를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투과전자현미경 액상셀 내부에 수소가 충분한 환경을 조성하고, 팔라듐 결정을 성장시켜 새로운 결정구조를 갖는 준안정 팔라듐 수소화물을 합성하는데 성공하고, 생성 원리를 세계최초로 규명했다.
그는 “충분한 수소분위기에서 준안정상이 생기는 것을 실제 실험을 통해 관찰하고, 계산과학 그리고 팔라듐 수소화물의 3차원 원자구조 규명을 통해 생성원리를 규명했다” 면서 “또 이렇게 만들어진 준안정상 소재가 안정상 소재에 비해 우수한 열안정성 그리고 수소를 2배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을 가지는 것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천 박사는 실험을 통해 얻은 준 안정상 소재가 팔라듐과 수소로 만들어진 만큼, 고가인 백금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로 활용을 기대했다. 또 새로운 소재합성법을 통해 준안정 수소저장 신소재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천 박사는 “이번 연구는 준안정 팔라듐 수소화물의 촉매 및 수소저장소재로의 응용연구가 핵심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현대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공정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리콘 단결정 제조기술인 초크랄스키법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분야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 과학자 얀 초크랄스키는 1918년 ‘금속의 결정화 속도 측정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 기술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아마도 초크랄스키 본인은 이 기술이 미래사회에 큰 파급효과를 끼치게 될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는 “새롭게 개발한 준안정상 소재합성방법론은 초크랄스키법처럼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분야에 사용될 수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연구는 준안정상 소재가 어떤 환경에서 왜 만들어졌는지를 규명하고, 방법론을 제안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우리가 제안한 새로운 소재합성 방법론을 이용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준안정상 신소재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밌어서 한 연구, 동료들에게 감사
?"연구비가 따로 나오는 프로젝트는 아니었는데 재밌어서 연구를 시작했어요. 연구주제가 재미있다는 이유로 많은 분들이 연구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특히 KIST 유성종/이영수 박사님, KAIST 양용수 교수님, POSTECH 손창윤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이번 연구는 KIST뿐 아니라 KAIST, POSTECH, 서울대 등 여러 연구원들이 5년간 의기투합한 결과다. 수소를 붙일 금속으로 팔라듐을 선택한 것도 여러 연구자들과의 논의에서 시작됐다.
천 박사는 “투과전자현미경을 통해 백금이나 금에 대한 연구결과가 많이 보고되고 있는 반면에, 팔라듐에 대한 연구결과는 보고되지 않더라. 왜일까 궁금했고 그 이유를 알고싶어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결과가 보고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존 정보로 설명이 불가능한 미지소재를 해석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천 박사는 KIST뿐 아니라 다른 대학의 교수진과 의견을 나누며 실험했다. 그 결과 준안정 팔라듐 수소화물이 헥사고날 결정구조임을 보여주는 결과를 얻었고, 이를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계산과학자들과 연구협력도 중요했다. 천 박사에 따르면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계산 결과에서도 헥사고날 결정구조가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하게 나왔다. 팔라듐 입자의 크기를 나노스케일로 줄이고 불규칙적으로 수소를 분포시키는 등 실제 실험 조건을 계산에도 반영한 결과 헥사고날 구조가 안정해지는 영역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원자분해능 토모그래피 분석방법을 통해 준안정상 결정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여 ‘다단계 결정화과정’이라는 새로운 나노입자성장 기전을 제안했다.
최근 그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미국의 모 그룹이 천 박사팀이 개발한 준안정 팔라듐 수소화물 대량생산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천 박사는 과학기술자들의 호기심이 새로운 영역의 발전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천 박사는 새로운 소재합성 방법론의 적용 범위를 확장하고, 대량생산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에 도전하고자 한다.
그는 “팔라듐 외에 다른 재료에 수소를 붙여보는 연구를 해보려 한다. 또한 수소 뿐만 아니라 리튬, 산소 등을 다른 재료에 붙여보는 연구를 진행해 우리가 제시한 소재합성 방법론의 유효성을 계속 입증하고 확인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면서 “또 준안정상 대량생산 시스템을 개발하여 제가 발견한 새로운 소재의 물성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고 연구에 대한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