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훈·남민호 박사팀, 뇌 속 반응성 별세포와 신경세포 영상화 성공
알츠하이머 치매 촉진 새로운 원인 규명, 치료제 표적 제시
"완치 어려운 치매, 과학계 新 발견과 도전 인정해줘야"
남민호 박사는 KIST 유일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다. 개원해 환자를 돌보는 대신 연구를 택했다. 한의학을 기반으로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현재 침치료를 통한 신경생물학적 기전 등을 연구한다.
류훈 박사는 신경유전자 발현과 후성 유전체학을 선도하는 과학자다. 퇴행성 뇌질환 '헌팅턴병'을 치료할 새로운 기전을 밝히는 등 다양한 연구성과로 주목받는다. 지난 2019년 해외우수연구자로 KIST에 영입된 그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 돌파구 모색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서로 다른 전공의 선후배 과학자가 '알츠하이머 치매 정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손잡았다. 이들은 최근 알츠하이머 진단연구에서 새로운 성과를 냈다. 두 연구자가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뇌 속의 작은 별 '별세포'다.
류훈·남민호 박사팀이 별세포에 기반을 둔 알츠하이머를 촉진시키는 원인을 찾았다. 또 이를 이미징기술로 촬영해 치매 조기진단 가능성과 새로운 치매 치료제의 표적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에서 남 박사의 아버지와 지인은 직접 참여해 임상연구를 도왔다. 이 외에도 뇌질환 환자들의 임상연구 협조, 타 기관 연구자와의 협력 등 다양한 구성원의 노력과 열정이 연구에 녹아져있다.
해당 연구를 통해 앞으로 알츠하이머 진단과 치료는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 연구를 주도한 두 연구자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110여년 풀리지 않은 치매 치료...연구자들 '별세포'주목하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알려진다.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아 알츠하이머 박사에 의해 최초로 보고됐다. 병이 보고된 지 110여년이 지났지만 정확한 발병기전과 원인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알츠하이머 치료는 완치가 아닌 조기 발견해 진행속도를 늦추는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류 박사와 IBS의 이창준 단장은 공동연구를 통해 알츠하이머 치료에 반응성 별세포를 주목해왔다. 별모양의 별세포는 우리 뇌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세포다. 뇌 속 많은 지분을 갖지만 그동안 신경세포를 돕는 조연쯤으로 여겨졌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 별세포가 신경세포에 다양하게 개입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치매와의 연관성도 연구되고 있다.
류 박사는 "알츠하이머는 뇌 염증을 동반하는데, 이 때 가장 먼저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가 별세포의 크기와 기능이 변하는 반응성 별세포화"라며 알츠하이머와 별세포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류 박사는 많은 연구로 둘의 연관성도 증명해냈다. 반응성 별세포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가 주변신경세포를 억제하고, 가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발생하는 과산화수소가 신경세포를 죽여 기억력을 감퇴시킨다고 보고 등이다.
하지만 반응성 별세포의 임상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 세포를 영상화해 관찰 및 진단할 수 있는 뇌신경 이미징 기술이 없는 가운데, 두 연구자가 공동연구로 한계를 뛰어넘었다. 연구는 우연을 가장한 끊임없는 연구교류에서 꽃을 피웠다.
암 진단 사용 물질 치매 진단에 적용 新 진단마커 기대
류훈·남민호 박사팀이 별세포에 기반을 둔 알츠하이머를 촉진시키는 원인을 찾았다. 또 이를 이미징기술로 촬영해 치매 조기진단 가능성과 새로운 치매 치료제의 표적을 제시했다.
"윤미진 연세대 교수, 이창준 IBS 단장과는 오랜 동료로 과학적 교류를 해오고 있습니다. 서로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고 진단하기 위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협동연구를 시작했죠."(류훈 박사)
류 박사팀은 반응성 별세포를 영상화해 관찰하면 조기 알츠하이머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 같은 고민을 들은 핵의학 전문가 윤미진 교수는 류 박사팀과 협업해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이하 PET)영상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PET영상은 종양, 뇌질환, 심장질환 등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연구팀은 기존 암 진단에 활발히 사용됐던 '탄소11-아세트산'과 뇌 활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됐던 '불소-18 플루오로데옥시글루코오스'를 함께 활용해 알츠하이머 동물 모델과 실제 환자, 정상군을 대조해 PET영상으로 뇌를 찍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환자군에서 반응성 별세포화가 식초로도 잘 알려진 아세트산을 활발히 대사함과 동시에 포도당 대사를 억제를 유도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 연구진은 PET 영상 등 다각적 분석으로 아세트산이 반응성 별세포화를 촉진시켜 푸트레신 및 가바의 생성을 유도, 치매를 유발한다는 것을 처음 규명했다. 이와 함께 반응성 별세포화를 억제하거나 별세포에서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모노카복실산 수송체1(Monocarboxylate transporter 1, MCT1)의 발현을 억제했을 때 아세트산 대사와 주변 신경세포의 포도당 대사가 정상 회복되는 것도 확인했다.
반응성 별세포 동물 모델에서 PET 영상 촬영을 통해 관찰되는 11C-아세트산 흡수 증가와 18F-FDG 흡수 감소
연구진에 따르면 지금까지 치매 주원인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하는 PET 영상은 임상에서 환자를 진단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또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치매 치료제도 모두 실패했다.
반면 탄소11-아세테이트산과 불소-18 플루오로데옥시글루코오스를 활용한 PET영상은 반응성 별세포와 기능적으로 억제된 신경세포를 임상 수준에서 진단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 박사는 "본 연구에서는 반응성 별세포가 정상에 비해 아세트산을 과다하게 섭취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아세트산의 섭취 과다가 알츠하이머병의 진단마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결과는 뇌과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술지인 ‘브레인’에 4월 17일 온라인 게재됐다.
완치 어려운 알츠하이머, 과학계 新 발견과 도전 인정해줘야 진보
"전 세계적으로 알츠하이머는 100명 중 1명도 고치기 어렵다고 알려집니다. 불치병으로 알려진 백혈병 완치율(약 80%)과 비교하면 정말 낮은 수치지요. 알츠하이머를 정복하려면 새로운 발견과 도전이 필요합니다."(류훈 박사)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국민기대수명은 83.6년으로 10년 전보다 3년 늘었다. 반면 2021년 알츠하이머병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5.6명으로 2000년 0.3명과 비교하면 52배 증가한 상황이다.
류훈 박사와 남민호 박사는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해 과학기술계가 다각적인 연구에 도전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구에서 '탄소11-아세트산'을 알츠하이머의 새로운 표지마커로 내세운 것도 큰 도전이었다.
류 박사는 "탄소11-아세트산은 지금껏 알츠하이머 영상화에 쓰인 적이 없어 과학계에서 새로운 표지마커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과학계가 기존의 관념들을 깨고 새로운 발견을 인정해줘야 질병에 대한 조기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남 박사의 노력이 알츠하이머 진단과 치료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더 나은 과학계 연구성과가 나오는 기반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알츠하이머 환자 뇌조직의 모노카복실산 수송체1(MCT1) 및 포도당 수송체-3(GLUT3) 변화
앞으로 두 연구자는 알츠하이머 정복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남 박사는 "탄소11-아세트산을 통한 영상화에 성공했지만 반감기가 짧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추가연구 등이 필요하다"며 "이 외에도 치매환자에서 반응성 별세포와 신경세포를 영상화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두 연구자는 임상연구에 참여해준 환자분들과 시민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했다.
연구결과의 임상적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임상데이터의 확보가 중요하다. 이에 정상군과 환자군을 모집해 많은 실험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임상은 주로 병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정상군을 모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에 남 박사는 직접 부친과 친구분에게 뇌의 PET촬영을 제안했다.
류 박사는 "훌륭한 동료과학자 (윤미진 교수, 이창준 박사) 분들과 연구열정이 대단한 박사후 연구원과 대학원생들, 그리고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의 숨은 노력이 있어 연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