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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간 과학자...'AI·디지털 도핑'으로 검은 유혹 잡는다
- 등록일 : 21-09-30
- 조회수 : 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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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도핑 전문가 파견 뒷이야기
손정현 도핑콘트롤센터장, 14일간 숙소↔랩 오가며 시료 분석
"세계인 축제, 스포츠 정신 훼손되지 않도록 최신분석법 개발할 것"
"88올림픽 당시 100종이던 금지약물이 800개까지 늘었습니다. 도핑 시료 분석은 여전히 수작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이 많죠. 우리는 디지털 도핑을 목표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IT 기술을 접목해 더 정확하고 빠르게 검사할 수 있는 분석법개발이 기대됩니다."
지난 7월 23일~8월 8일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 우리나라 도핑 전문가 2명이 파견돼 최신 도핑분석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지원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주인공은 KIST 도핑콘트롤센터의 손정현 센터장과 성창민 박사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이 많은 선수가 모일 때면 도핑 전문가들은 상부상조하며 각 나라에 집결한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팬데믹으로 해외 출장길부터 순탄치 않았다. 오기로 예정됐던 전문가들이 자리를 채우지 못하면서 소수의 인력이 모든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 숙소와 도핑랩 외엔 발도 딛지 못한 두 연구자는 살이 쪽 빠져 귀국했다.
귀국 후 자가격리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손 센터장을 만났다. 도쿄파견을 통해 지원한 연구내용과 현재 국내 도핑연구 현황 및 향후 계획 등을 들었다.
14일간 외부활동 없이 숙소-연구실 오가며 시료 분석
우리나라 유일 도핑센터를 운영하는 KIST의 도핑콘트롤센터는 40여 년간 수많은 국제대회 분석을 지원하면서 우리나라가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기술력도 세계에서 세 손가락에 꼽힌다. 2020년 세계반도핑기구의 '전 세계 도핑센터별 고위험 종목 특수분석 기술'자료에 따르면 성장호르몬 유사 금지약물의 모든 분석기술을 가진 곳은 한국, 미국, 브라질이 유일하다.
이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KIST 연구자들은 도쿄올림픽 지원을 위해 지난 7월 24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준비된 버스를 타고 곧장 호텔로 이동한 두 사람은 2주간 외부활동 전혀 없이 시료만 분석했다. 손 센터장은 "아침마다 코로나 타액 PCR 검사를 했다. 2시간 전 양치질 금지, 30분 물 마시기 금지 등 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3일~8월 8일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 우리나라 도핑 전문가 2명이 파견돼 최신 도핑분석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지원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주인공은 (오른쪽)KIST 도핑콘트롤센터의 손정현 센터장과 (왼쪽)성창민 박사다.
손 센터장에 따르면 하계올림픽은 동계올림픽보다 2배 많은 도핑 전문가들이 모인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우 40여 명의 도핑 전문가가 한국을 찾았고, 일본에서도 4~5명의 전문가 도움을 받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2020 도쿄올림픽에는 80여 명의 전문가가 모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팬데믹 상황으로 어려웠다. KIST에서도 서너 명의 전문가가 도움을 줄 예정이었지만 올림픽 개최가 불투명했고, 자가격리까지 1달 이상 자리를 비워야 해 2명으로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녹록지 않았지만 두 연구자는 KIST가 보유한 성장호르몬 및 유사 금지약물에 대한 분석기술 노하우를 전수했다. 손 센터장은 "현지 랩에서 일어난 일을 공유하는 것은 절차상 어렵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성장호르몬제는 사용 여부를 검출하기가 매우 어려운 데다가 효과가 좋아서 이를 효과적으로 검출하는 것이 이번 도쿄올림픽에서의 중요한 화두였다. 다양한 방법을 공유하며 시료를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손 센터장은 "2018 평창올림픽을 통해 축적한 도핑 시료 분석 노하우를 전수했으며, 사이클 스타 랜스 암스트롱이 사용했던 금지약물로 유명해진 적혈구 생성촉진인자 최신분석기술도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세계 첫 디지털 도핑기술 도입, 사람 실수 0%로
도핑검출기술은 표준화된 기술이 없다. 기관의 고유기술로 운영한다. 늘어나는 금지약물을 정확하고 빠르게 검사하기 위해 전 세계 랩이 고군분투한다. 그 가운데 KIST는 도핑 관련 업무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디지털 도핑 시스템'을 선도하고 있다.
손 센터장에 따르면 기존의 도핑연구는 수작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한 선수 시료 분석한 자료를 프린트하면 A4용지로 수백 장이 나온다. 컴퓨터 엑셀로 상세히 적어 검토하는 등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며 "자동화를 위한 연구 장비들이 개발되긴 했지만 고가인데다 도핑 전용 시스템이 아니어서 성공적으로 사용한 사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KIST는 2014년부터 디지털 도핑기술을 개발해 2015년 시범 가동 후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했다. 웹 베이스에서 사용할 수 있어 패드나 노트북 하나로 어디서든 로그인해 쓸 수 있다. 출력 없이 웹에서 최종성적서까지 발급할 수 있다. 시간적 단축도 하면서 적은 인력으로 많은 선수의 시료들을 분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발생했던 오류가 0%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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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센터장은 "손으로 했던 수많은 공정을 온라인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우리는 디지털 도핑을 신조로 인공지능과 시료 전처리 자동화 등 추가연구를 통해 세계최초 도핑 분석법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KIST 내 인공지능연구단과 협업해 전자화된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접목해 더 정확하게 검토하려고 한다. 엔터 하나로 100% 정확도가 나올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지속적으로 학습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뒤쫓는 검사법 그만, 선제적 도핑 분석기술 만들 것
평창올림픽 당시 600개였던 금지 약물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800개로 늘어난 것처럼 금지약물은 어둠의 통로에서 계속 만들어져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다. 뇌 도핑과 유전자 도핑 등을 검출방법의 개발도 시급한 상황이다.
손 센터장에 따르면 뇌 도핑은 특정 뇌 영역에 자극을 줘 균형감각이나 지구력 등 스포츠 능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이다. 뇌 도핑을 검출할 방법은 아직 없지만, KIST는 뇌의약연구단과 공동연구를 통해 뇌 속 신호를 주고받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한 분석법을 개발 중이다. 그는 "소변에서도 검출할 수 있도록 분석법을 만들었고 동물실험에서 유의미한 생체표준인자를 찾았다. 기존에 알려진 감도보다 100배 이상 성능이 좋게 나와 이른 시일 안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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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도핑 약물은 불법적으로 만들어졌고, 선수들이 사용하다 위법으로 밝혀졌을 때 그 구조를 밝혀 대응하는 뒤쫓는 검사법이 주를 이뤘다. 손 센터장은 "늘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도핑검출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약물을 먹었는지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소변검사 하나로 선수의 신체 상태와 변화를 진단하고 판단하는 방법으로 선제적 도핑검사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우리가 제시한 AI, IT를 접목한 디지털 도핑이 세계수준의 도핑 분석기술을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