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창의포럼 승효상 건축가의 땅과 건축(2014.05.21)
- 등록일 : 201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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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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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과 아파트로 획일화된 개발도시 서울에서 한옥지킴이를 자처한 외국인들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개발업자들에게 소송과 물리적 시련을 당하면서도 한옥을 보존하려는 푸른 눈의 외국인을 보고 있노라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중세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는 유럽의 도시들과 600년 고도(古都)의 흔적을 궁궐에서만 찾을 수 있는 우리의 서울을 비교할 때마다 서글퍼진다.
터무니
5월 창의포럼 강사인 승효상 선생은 사람에게도 지문이 있듯 땅에도 고유한 무늬인 터무니가 있다고 했다. 그는 땅이 가진 고유한 무늬를 밝혀내고,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곳에 맞는 건축을 해야 한다고 했다. 건축을 부동산과 같은 축재의 수단으로 삼아 산을 갈아엎고 계곡을 메우는 행위는 인간존엄성에 대한 배신이며 범죄적 행위라고 했다. 건축을 공학과 예술로 이해하는 것은 협소한 해석이며 그 본질은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라 했다. 건축설계는 공간구성을 통해 다른 사람의 행위와 삶을 조직하는 것이기에 결국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인문학이라 했다. 우리 선조들은 땅, 자연과 교감하며 그곳에 맞는 건축을 했는데 지금의 우리는 터무니없는 개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스터플랜과 개발
미래를 위한 꿈같은 도시라 칭송받았던 세인트루이스의 계획도시는 인종, 부자와 가난한 자, 공공과 개인의 영역을 분리해서 건설되었다. 분리된 도시에 범죄가 횡행하면서 슬럼화 되고, 이로인해 도시는 결국 파괴되고 말았다. 승효상 선생은 이를 모더니즘 건축의 종말이자 마스터플랜의 폐기라고 했다. 그 실패한 마스터플랜이 우리나라 계획도시의 절대적인 교본이라 했다. 상업지구, 도심, 부도심 등 용도에 따라 다른 색깔이 칠해지고 위계적 질서의 계급도시가 만들어졌다. 색깔이 나타내는 것은 개발에 대한 인간의 욕망 즉 땅값이다. 그곳에 거주하는 우리는 잘못 만들어진 도시구조로 인해 소통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대립하며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마천루와 지배자 중심의 개발
직립보행하는 인간이 중력에서 벗어나 땅에서 떨어지려는 욕망이 빚어낸 건축물이 마천루(Skyscraper)이다. 승효상 선생은 마천루라는 단어 뜻 자체도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하늘을 닦는 집’이라했다. 높은 건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동양에서는 탑으로 서양에서는 고딕양식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높이에 대한 인간의 욕망만큼 오래된 것이 바로 중심과 지배에 대한 욕망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성베드로 성당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돔의 하부는 교황이 거쳐하는 곳으로 중심을 움켜진 자가 공간을 지배한다는 사상을 잘 보여 준다고 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보아도 성주가 거주하는 이상도시 중앙을 계급적 위계질서로 방어하는 기하학적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권력자와 지배자가 중심에 군림하는 완벽한 위계를 바탕으로 도시와 도로가 설계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담은 서양도시의 원전이었다.
빈자의 미학, 비움과 공유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빈자의 미학)을 실천하는 승효상 선생이 말하는 좋은 건축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배제한 비움과 공유였다. 승효상 선생이 말한 비움을 대표하는 것이 우리의 마당이다. 중동의 중정(中庭)은 날씨 때문에 만들었고, 중국의 중정은 계급적 질서 때문에, 일본의 중정은 단지 감상을 위해 만들었지만 우리나라의 중정인 마당은 비움과 채움이 반복되는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노동하고, 잔치를 벌이고, 제사지내고, 놀이하고, 교육하는 행위가 끝나면 다시 비워져서 생각을 위한 사유의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세계의 건축가들이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종묘’에 있는 월대 또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에너지가 충만한 비움의 공간이라 했다. 승효상 선생이 말하는 건축에서의 공유란 삶의 공동체를 위해 서로 나누는 것이라 했다. 아랫 집의 지붕이 윗집의 테라스가 되고, 옆집과 벽을 공유하고, 집 밖의 공간은 공동체를 위한 이동의 공간이 되고, 쉼터가 되고, 시장이 된다고 했다.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에게해의 그리스 산토리니도 이런 모습이었고,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의 달동네도 이런 모습이라 했다. 산토리니는 지금도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지만 우리의 달동네는 개발이라는 테러로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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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선생은 철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인용하면서 ‘지식인은 자기 스스로를 경계 밖으로 추방해서 잘못된 제도와 싸우는 사람’이라 했다. 박제된 이론의 도그마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 밖을 지향하는 연구자의 자세, 진정한 노마디즘의 실천가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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