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창의포럼 봉준호 감독의 창의적인 충동과 그 두려움에 관하여(2013.12.18)
- 등록일 : 2013-12-24
- 조회수 : 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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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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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후속 작품을 촬영 중인 봉준호 감독은 매우 지쳐보였다. 방전된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 강의할 에너지가 과연 있을까 염려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강연 첫 음성을 듣고는 나의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봉감독은 자신이 정해준 강연제목 ‘창의적인 충동과 그 두려움에 관하여’는 즉흥적인 것이었고, 강연내용은 이와 무관하다며 청중들의 폭소를 유발했다.
기억, 새로운 시선, 영화
봉준호 감독은 본인의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구상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옆에 있는 사람, 혹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광기(?)를 느낀다고 했다. 좋은 시나리오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이 오늘의 봉준호 감독을 만든 원천일 것이다. 일반인에게 기억은 그냥 흘러간 추억이지만 봉감독에게 기억은 새로운 시각이자 영화를 풀어나가는 핵심 포인트다.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설국열차도 봉감독이 어릴 적 즐겨본 ‘은하철도 999’에서 본 그 기차에 대한 봉감독의 로망이 담겨져 있다. 대학시절 오대산 주차장에서 봉감독은 산행을 마다하고 좁은 관광버스 안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줌마들을 목격한다. 좋은 대자연을 앞에 두고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아줌마들이 대학생 봉준호의 뇌리 속에는 충격의 잔영으로 있었다. 모처럼의 소중한 여행에서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우리네 서민 아줌마들은 관광버스 이동시간마저도 놀이의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서글픈 사연을 인지한 영화감독 봉준호는 대학시절 아련한 기억을 주저 없이 영화 마더의 라스트 씬으로 옮겼다. 영화 괴물도 고등학교 시절 한강변 아파트에서 검은 물체가 잠실대교에 매달려 있다가 빠지는 모습을 본 것이 시나리오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억과 사물을 보는 다른 시선은 오롯이 그의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과학, 예술, 그리고 배우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최근작품 설국열차 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판타지 영화가 아닌 SF영화이기 때문에 17년간 달릴 수 있는 기차와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관객들에게 최소한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17년간 연료를 주입하지 않고 달리는 열차의 동력장치는 핵잠수함의 핵융합 원자로를 상정한 것이라 했다. 과학기술은 이처럼 영화의 내용을 채우는 모티브가 되기도 하지만 영화라는 예술을 구성하는 필수요소로 작용한다. 최첨단 하이테크 장비와 모션 캡쳐, 컴퓨터 그래픽 등이 없다면 영화 ‘아바타’와 ‘반지의 제왕’도 그처럼 생생한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장르인 영화에서 절대 대체 불가능한 것이 바로 배우라고 했다. 영화감독, 영화스텝은 5년 동안 실미도 같은 섬에서 열심히 교육훈련 시키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송강호나 김혜자 같은 명배우는 타고난 DNA가 없으면 할 수 없다 했다. 배역에 몰입해서 빙의된 듯 광기어린 연기를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 극중 본인의 연기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고 그 누가 대체할 수 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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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과 리더십
봉준호 감독은 영화촬영장을 질퍽거리는 땅, 거대한 장비, 그 장비를 연결하는 무수한 전선들, 스텝과 배우들이 뒤엉켜있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공간이라 했다. 그 아름답지 못한 공간의 최고 의사결정자가 바로 감독이다.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함께한 배우나 스텝은 하나같이 봉준호 감독의 리더십을 칭송한다. 설국열차의 주인공 크리스 에반스도 봉준호를 ‘촬영 현장의 모든 답을 갖고 있는 현자’라고 그를 추켜 세웠다. 강연 말미에 봉감독이 언급한 영화 마더의 마지막 장면 ‘관광버스’촬영 후일담을 듣고 왜 그의 리더십을 칭송하는지 머리가 끄덕여졌다. 봉감독은 스텝들에게 관광버스 씬의 촬영원칙을 제시했다. 그 원칙은 첫째 컴퓨터 그래픽을 쓰지 않고, 둘째 실제 달리는 버스를 촬영하고, 셋째 태양광선이 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스와 촬영차량이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도로, 태양광선이 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할 때의 정확한 시점 등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있었지만 스텝들은 봉감독의촬영원칙을 수긍하고 최적의 장소를 물색했고 결국 촬영에 성공했다. 좋은 작품을 위한 세밀함, 용의주도함, 그리고 그 바닥에 깔린 감독의 창의성은 배우와 스텝이 봉감독을 지지하는 힘일 것이다. 배우와 스텝의 감독에 대한 자발적 동의가 없다면 봉감독이 추구하는 디테일은 결코 그들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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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감독이 영화 마더의 마지막 장면을 틀고 객석으로 돌아와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본인이 계획한 대로 최상의 영상을 만들어낸 것이 지금도 감독 자신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인 듯 했다. 올 초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은 특강에서 5분이 넘는 서편제 진도아리랑의 롱테이크 장면을 신이 돕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영상이라 했다. 감독도 봉준호 감독이 말한 배우처럼 광기가 있어야 관객을 감동시키는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과학자도 광기와 같은 열정이 있는 것 아니냐며 언젠가 그런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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