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창의포럼 박범신 작가의 부족함과 그리움의 미학(2013.11.20)
- 등록일 :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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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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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은교’를 보고 박범신 작가를 창의포럼에 초대하고 싶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그가 내게 한 말은 ‘저 강의 잘 안 합니다’였다. 이듬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세 번째 다른 이가 연락을 해서 그를 겨우 KIST로 모실 수 있었다. 박범신 작가는 40권을 소설을 썼지만 똑같은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은교’에서 쓴 문장을 ‘소금’에 절대 쓰지 않는다고 했다.(박범신 작가는 이것을 ‘소금의 문장으로 은교를 엿 먹인다’라 했다.). 강연에서는 새문장이 아닌 어디서 했던 말을, 책에서 썼던 말을 반복하는 약장사처럼 보일까봐 강의를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성작가로는 처음으로 소설 ‘촐라체’를 포털에 연재했고, 좋은 소설을 위한 내적충전과 긴장을 위해 고향으로 귀향하며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청년작가 박범신에게 반복되는 주제의 강연은 탐탁지 않은 청탁 이였을 것이다.
박범신의 삽화
박범신 작가는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인문학적인 KIST의 환경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단시간에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KIST 과학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성장이 가난을 해결해 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압축적 고도성장이 수반한 수많은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고통이었다고 했다. 박범신은 부족함과 그리움의 미학을 자신의 어릴 적 삽화 두 장면으로 설명했다. 중학생 박범신은 20리 들길을 걸어서 통학했다. 학교를 마치고 주린 배를 부여잡고 걷던 강경의 황금들녘은 부족하거나 빈 것이 없는 충만한 곳, 완전한 세계였다. 소설의 ‘은교’도 단순한 어린 여고생이 아니라 강경의 들녘처럼 불멸의 완전함과 조금도 억압이 없는 완전한 아름다움이라 했다. 반면 들길을 걷고 있는 박범신은 결핍하고 부족한 실존이라 했다. 두 번째 삽화는 박범신의 가족이야기다. 장사를 하러 집을 비운 아버지 대신 가정을 책임져야 했기에 늘 날카로웠던 어머니, 방 두칸 좁은 집에서 예민한 어머니와 4명의 누나간의 불화로 박범신의 집안은 평안한 날이 없었다. 처마 밑 굴뚝에서 집안의 다툼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리던 박범신에게 창호지 은은한 불빛을 통해 전해지는 옆집 가족의 웃는 소리는 그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운 세계였다. 박범신이 등지고 있는 굴뚝은 자신의 실존이자 결핍의 세계였고, 눈으로 접한 세계는 본인이 너무나 가고 싶은 세계였다고 했다.
문학과 상상력
박범신은 부족함과 결핍의 세계와 가고 싶은 세계 사이의 거리를 재보고, 손을 내밀어 서로 소통의 길을 찾는 것이 소설가의 책무라고 했다. 근대화 시기의 과학자들도 경제성장이라는 지시받은 과업에 충실해서 성공의 동력을 제공했다가 보다는 결핍과 부족함의 경험, 그리고 그리운 세계와 충만에 대한 내적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범신은 작가의 상상력은 안락, 행복, 안정이라는 환경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내적으로 긴장하고, 예민하고, 부족하고, 불안하고, 추락과 상승,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상상력이 샘솟는 다고 했다. 이런 상상력의 내적 조건은 과학자도 마찬가지라 했다. 내적 불안감과 긴장이 최고의 예술작품을 만든다며 베토벤과 고흐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행복이란?
박범신이 자신의 신을 찾아서, 작가의 내적 에너지를 찾아서 자주 방문하는 희말라야에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다. 부탄은 GNP가 2천불에 불과하지만 국민의 행복지수가 97%에 이른다고 했다. 소득이 낮고 복지수준도 낮지만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부족함 속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부탄은 고아들이 생기면 마을의 좀 부유한 집에서 책임지고, 마을에 부유한 집이 없다면 종교기관이 돌본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아름다운 노력이 부탄의 행복함의 원천이라 했다. 국민소득 2만불의 대한민국은 부모를 버리고 있다. 가난과 결핍을 극복하고자 생산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가치를 모두 버렸다고 했다. 박범신은 잘살고 싶은 욕망, 명품을 가지고 싶은 욕망을 자본주의가 주입한 바이러스라고 했다. 박범신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지배하는 생산성을 버리고 내면의 나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생산성과 세상이 우리에게 행복에 대한 열망, 사랑에 대한 열망, 신성(神聖)에 대한 열망을 버리라고 강요한다. 이름 모를 풀꽃을 보고도 울컥하는 내 마음에 신성은 생산성에 걸림돌이기 때문에 세상은 신성에 대한 욕망을 버리라고 한다. 박범신은 이런 생산성에 저항하고 행복을 완성하고 유지하려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자신 내면의 신성을 찾으려는 초월적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주입한 생산성의 노예, 욕망의 바이러스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과학적 사고로 현상만 보지 말고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경이로움을 보려는 초월적인 영혼의 열망이 있는 삶이 품위가 있는 삶이라 했다.
박범신은 상상력은 순정을 유지하고, 상처받기 좋은 상태에서 나온다고 했다. 과학자의 상상력 제고를 위해 자신과 같이 껄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으라고 했다. 일흔이 다된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위해, 청년의 순정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한 성찰을 하고 있는데 불혹을 갓 넘긴 나는 성과와 효율성의 굴레 갇혀 껍데기만 청년이 아닌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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