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창의포럼 차동엽 신부의 희망의 귀환(2013.08.28)
- 등록일 : 2013-08-30
- 조회수 : 1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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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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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멘차(희망 멘토 차동엽) 차동엽 신부 얼굴에서 내전으로 폐허가 된 나라, 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선종한 이태석 신부가 떠올랐다. 성공이 보장된 의사의 길을 뒤로하고 이태석 신부님은 사제의 길을 택했고, 톤즈의 아이들을 위해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웠다. 신부님이 돌아가신 후 톤즈의 아이들이 신부님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행진한 장면에서 이태석 신부님이 톤즈에 남긴 땀방울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차동엽 신부님도 사제의 길을 걷기 전에 엔지니어를 꿈꾼 전도유망한 공학도였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긍정보다는 부정이 횡행하는 시대에 치유의 메시지로 세상에 울림을 전하는 차동엽 신부님의 노력 또한 이태석 신부님의 땀방울만큼의 값어치가 있으리라.
희망은 존재하는 것
‘희망이 오지 않는데 희망이 온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희멘차에게 기자들이 묻는다. 희망은 밖에서도 오고 내 안에서도 생기는데, 밖에서 오는 것보다 내 안에서 주체적으로 형성된 희망이 더 의미 있는 희망이라고 했다. 희멘차는 희망의 존재근거로 자유의지를 들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뇌하고, 선택하고, 결단한다. 우리는 강의를 들으면서도 강의가 끝난 후 연구를 걱정하고, 오늘 일과를 고민한다. 모두 현재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본능에 따라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럼 희망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희멘차가 답한다. 농업시대에 희망은 밭과 들판 위에 있었다. 작은 땅뙈기의 밭이라도 경작하면 그곳이 희망이 되었다. 현재의 희망은 물적자원과 지적자원, 희망의 에너지인 정신적 자원, 네트워크의 인적자원, 그리고 종교적 힘인 영적자원을 동원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다. 특히 희멘차는 쓰레기를 가지고도 에너지를 만들 수 있고, 우리 조상들이 궁핍했던 시절에 산천의 모든 것을 먹거리로 사용했듯 물적자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연구자들은 가져야 한다고 했다. 희망은 불끈한다
오기, 호기, 강기
희망의 실체는 불끈 쥐는 힘, 결기라고 희멘차는 말했다. 그 힘에는 오기와 호기 그리고 강기가 있다. 오기는 근성이며, 포기할 것인가 계속 진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으로 포기의 반대말이다. 오기가 업을 유지하는 근성이라면 호기는 무한한 도전정신이다. 호기는 불가능한 목표일지라도 필요하다면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무모한 도전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 불가능 하리라는 인간의 달탐험을 과감하게 선언했던 것을 호기의 대표적 사례로 희멘차는 언급했다. 마지막 강기는 버티는 기운, 다시 말하여 끈기다. 강기는 전투태세에서 나오는 비상한 능력 즉 초능력과 같은 것이다. 영국소 헤리퍼드 종은 가장 추울 때 두 뿔로 버티며 그 추위를 견뎌낸다. 다른 종의 소들이 추위에 견디기 위해 비계가 많은 엉덩이로 버티다 동사하는데 해리퍼드 종의 소는 추위와 맞서는 강기로 생존한다. 포기하지 않는 오기의 정신, 무모해 보이는 도전정신의 호기, 연구의 마지막 끝단까지 악과 깡으로 버티는 굳센 기운의 강기가 합치된다면 연구성과의 질은 보증된 것이나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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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우기는 것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는 그 결과를 수용하는 사람과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 두 가지 부류가 있다.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시한부 인생 선고 후 생존연한은 후자가 더 길다고 했다. 희망은 절망적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아무것이나 붙잡고 우기는 것이라 했다. 이스라엘을 첨단 농업국가로 만든 것은 불모지 사막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우김에서 출발했다. 희브리어로 희망하다는 동사 ‘야할(yachal)’은 ‘우긴다’라는 의미를 같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남들이 아무리 ‘망했어’, ‘끝났어’라고 말해도 ‘나는 희망이 있다’라고 우긴다. 아무리 근거가 없는 희망이라도, 붙잡을 때 희망은 오기, 호기, 강기의 모습으로 다시 우리와 함께 한다고 했다.
강의가 끝난 후 희멘차가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키스트 그대 어깨 위에 나라의 명운이’. 희멘차에게 KIST는 대한민국의 희망이었나 보다. 그 희망을 받아 우리 모두 외쳐보자. ‘KIST 아직 죽지 않았어. 우리가 대한민국의 미래야.’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Spero, Spera) 희망의 기운이 KIST에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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