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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시사] 과학기술계가 여성 인재에게 보내는 초대장
- 등록일 : 20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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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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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KIST 내부 게시판 글이 눈길을 붙잡았다. 지난 2월 6일 새벽,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을 덮친 규모 7.8의 최악의 지진에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돕는 일이었다.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재앙 앞에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 없어 시작한 일이 아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18명의 튀르키예 학생이 있어 우리 일이다.
KIST 구성원은 다국화하는 추세다. 글로벌 전략에 따른 당연한 모습이지만 연구 수행을 위한 연구자를 확보하는 궁리이기도 하다. 베이비붐 시대에 해마다 100만명 이상 태어났다. 앞으로 연구실을 채워가야 할 MZ세대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력 부족으로 아우성치는 타 분야와 다름없이 과학기술계도 어려움이 본격화하고 있다. 인재 유입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인재 확보 차원에서 글로벌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실효성 있고, 사회적 가치 창출도 가능한 효과적인 인재 확보 방안이 있다. 여성 과학자를 늘이는 방법이다. 전체 대학 입학자 중에 여성은 거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자연과 공학 계열 졸업생은 2021년 34%에 불과했다. 2018년 여성과학기술인력 실태조사로 확인한 여성 연구자 비율 20%와 10억 이상 연구 책임자 7%라는 숫자는 문제점과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먼저 문제점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공학 계열에서 여성의 비율이 낮다는 점이다. 자연 계열에서는 오히려 여성의 비율이 앞서지만 두 배 이상 정원을 가지는 공학 계열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입학생 중에 여학생 비중이 겨우 25%를 넘어섰다. 20년 전엔 10% 수준이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더 많은 여학생이 과감하게 공학 계열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숙제다.
두 번째 숙제는 시간에 따라 여성이 사회생활에서 이탈하는 현상을 일컫는 ‘새는 송수관(leaky pipeline)’을 극복하는 일이다. 이 두 문제 모두 근본에는 자녀 양육과 가사에서 불평등을 가져오는 ‘모성 장벽(maternal wall)’이 있다.
이 장벽을 넘는 일을 온전히 여성 연구자 개인의 몫으로 남겨둘 순 없다. KIST가 설립된 1966년 학위를 취득해 한국 최초의 여성 농학박사인 김삼순 박사도 동생의 시숙인 이태규 화학박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유학 길에 오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장벽을 낮추고 있는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정부, 사회는 물론 연구기관도 적극 나서야 한다.
여성 친화적 연구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KIST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 과학자에게만 적용되는 특별 제도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빨리 쉽게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문제의 근본을 다루지 않는 대증요법이라는 생각이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제도라야 한다.
KIST는 출연연 중 가장 먼저 재량근무제도를 도입했다. 연구원이 획일적인 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제도다. 연구에 적합하지 않은 52시간 제도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지만 연구와 가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양립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해마다 정량적 연구 성과로 연구자를 줄세우기식으로 평가했던 제도를 없앴다. 출산과 육아로 연구를 일시 중단하더라도 단기 평가에 대한 불안 없이 안정적으로 연구 현장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도 출산 휴가 후 평가를 일정 기간 유예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부담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연구가 일정 워밍업 시간을 주면 원래 성능을 발휘하는 기계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산, 육아, 휴직이 여성 연구자만의 제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남성 연구자도 신청하기 시작했다. 기존 제도와의 시너지 효과도 확인했다.
근본적 혁신이야말로 과학기술계가 여성 인재에게 보내는 최고의 초대장이다.
출처: 헤럴드경제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