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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과학기술 동맹,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 등록일 : 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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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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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KIST 원장
한미 정상이 지난달 발표한 8719자 길이의 공동성명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첫 의제인 북핵 문제를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하지만 이번 공동성명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따로 있었다. 안보에 1514자를 할애한 반면, 절반이 넘는 4500여 자는 과학기술 동맹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특히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공급망, 원자력, 우주, 탄소 중립, 감염병, 차세대 통신 등의 핵심 이슈 모두에서 ‘대등한’ 상호 협력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 과학기술 협력의 역사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군 전투 부대의 파병이 절실했던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대해 14개 항으로 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중 12번째 의제가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설립 근거가 된 공업연구소 설립 지원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국은 31만여 명의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했고 5099명이 전사, 1만1232명이 부상당했다. 청년들의 피땀 위에서 싹을 틔운 한국의 과학기술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란 열매로 숭고한 희생에 보답했다.
그로부터 57년이 흐른 현재, 세계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기술 패권 전쟁이다. 과학기술이 국가의 안보와 주권을 지키는 최고의 무기가 된 21세기, 미국이 명실상부 과학기술 선도 국가의 일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한국에게 이제 함께 가자고 먼저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은 대한민국의 과학기술계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목표를 분명히 보여준다. 한강의 기적에 이어 이제 과학기술 선도 국가라는 새로운 사명에 어떻게 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나침반은 자신감이다. 우선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은 따라잡기 힘들다는 심리적 한계에 스스로를 가둬온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한국의 과학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이 결코 립 서비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제 미국도 탐낼 만큼 중요한 핵심 기술들에서 초격차를 확보한 우리의 과학기술력을 믿어야 한다.
또 다른 필요조건은 연구 현장의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은 비단 창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 아무도 해보지 않은 연구에 도전하는 문화를 뜻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실패가 당연해 보이는 도전적 연구 사업을 위해 정량적 개인 평가를 없앤 이유는 이분법적 평가, 위험 회피형 연구는 이제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KIST 연구자들은 그린 수소 경제성 확보, 상온 동작 양자 컴퓨터 개발 등 연이어 세계적인 성과를 낳았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 정신을 실행(practice)으로 정의한다. 실행이 없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시도하면 단 0.1%라도 가능성이란 것이 생긴다.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으로 이끈 정주영 회장의 “해봤어?”란 일갈도 같은 맥락이다. 과학기술 선도 국가라는 새로운 시대적 사명 앞에 선 2022년, 그 한마디가 새삼 다시 가슴이 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