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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두르는 탄소중립
- 등록일 : 202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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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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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막을 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분을 1.5도 이내로 막자는 세계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였던 동시에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목표인지도 여실히 드러낸 자리였다. 일단 목표달성시점에서 시각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가 자국 감축목표를 하향조정하는 일이 대거 발생했다. 다른 국가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막심한 타격을 입었던 경제가 탄소중립이라는 부담까지 더해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가 탄소중립 달성의 열쇠는 과학기술에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그리고 가까이는 2030년까지 지금 수준 대비 40%를 줄여야 하는데 기술 없이 규제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기술 확보가 곧 탄소중립의 충분조건인 것도 아니다. 기술 보급과 함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대전환이 함께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철강·석유화학 등 이른바 고탄소산업은 친환경 공정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기존 공정의 경제성을 따라잡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전기생산의 경제성뿐 아니라 저장, 송배전에 필요한 막대한 인프라 구축이 요구된다. 이처럼 탄소중립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혁신적 기술뿐 아니라 기반 기술과 인프라의 획기적 발전, 또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참여가 함께 요구된다. 탄소중립에의 도전은 과학기술 혼자 뛰는 100m 달리기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가 같이 뛰는 2인3각 경기인 셈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기술 확보와 관련해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연구·개발(R&D)의 본질적 속성, 불확실성에 대한 고려다. 탄소중립의 해(解)를 찾는 방정식에서 R&D는 상수가 아닌 변수다. 뜨겁고 긴 여름을 지나야 수확할 수 있는 벼농사처럼 과학기술 연구개발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탄소중립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국가도 아직 분명하게 앞서지 않은 미개척의 영역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연구에서는 투자와 성과가 정확히 비례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역설적으로, 일선 현장의 연구자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로 자유로이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설사 그 목표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더라도 좋다.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흡수량 역시 대폭 늘려야 한다는 목표 자체가 이미 도전적이다. 지금은 그 목표를 달성할 수단을 찾기 위해 성과에 대한 압박 없이 무조건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때다. 지금처럼 수년 안에 우수 논문 몇 편, 특허 몇 개, 일자리 몇 개 등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잣대, 즉 정량지표를 들이댄다면 과연 탄소중립을 앞당길 수 있는 파급효과 큰 혁신이 우리 손에서 나올 수 있을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은 영어로 ‘천천히 서둘러라(Make haste slowly)’로 쓸 수 있다. 본디 창조적 인재인 연구자에게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 상상을 결과물로 구현할 시간과 자원을 부여하자. 연구자들이 천천히 서두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넘기 위한 도움닫기의 정석이다.
출처 : 헤럴드경제(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122100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