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뇌가 쥐의 감각 신호 처리도 확인

쥐 수염 건드리면 인간 미니 뇌가 반응

할리우드 영화 ‘닌자 터틀’에는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가진 쥐가 거북들에게 무술을 가르친다. 영화의 상상력이 현실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이 미니 인간 뇌를 쥐에게 이식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사람의 신경 질환을 쥐 같은 작은 실험동물에서 연구할 길이 열렸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일부에서는 인간의 의식을 가진 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세르지우 파스카 교수 연구진은 1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배양접기에서 키운 뇌 오가노이드(organoid)를 어린 쥐에게 이식해 신경세포들이 통합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오가노이드(organoid)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臟器)라고 불린다. 이전에는 인체 세포를 평면 배양접시에서 키워 인체 내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인간 미니 뇌가 쥐의 몸에서 감각 처리 

연구진은 신경줄기세포를 입체로 배양해 미니 뇌로 키웠다. 생후 3~7일 지난 어린 쥐에게 이식했다. 인간 미니 뇌는 어린 쥐의 뇌보다 더디게 자라 6개월을 더 기다렸다. 미니 뇌는 처음보다 6배로 커졌으며 쥐 뇌의 한쪽 반구에서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미니 뇌가 이식된 곳은 감각 신호를 처리하는 체성 감각 대뇌 피질이었다. 

연구진은 인간과 쥐의 뇌가 하나로 연결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쥐에게 물을 주며 빛을 비추는 실험을 했다. 쥐는 나중에 물을 주지 않고 빛만 비춰도 혀를 핥았다. 앞서 연구진은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미니 뇌의 신경세포에 붙였다. 쥐에게 빛을 비추지 않고 미니 뇌에만 빛을 비춰도 역시 혀를 핥는 행동이 나타났다. 이는 미니 뇌가 쥐의 감각 신호를 받아 처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쥐의 수염을 건드려도 역시 미니 뇌가 반응했다. 파스카 교수는 논문 발표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미니 뇌가 쥐의 뇌와 통합되는 데 성공한 것”이라며 “전자회로에 새로운 트랜지스터를 추가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신경 치료제 효과, 실험동물서 확인 가능

그동안 과학자들은 미니 뇌로 퇴행성 뇌질환이나 정신질환의 발생 과정을 규명하고 치료제 효과를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아직 오가노이드는 인체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혈관이 자라지 않아 영양분을 받지 못한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신경세포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실제 뇌와 같다고 볼 수 없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인간 미니 뇌를 쥐의 뇌와 결합시키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작은 실험동물에서도 인간의 신경 질환을 더 잘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은 인간과 쥐의 하이브리드 뇌로 신경 질환을 연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자폐 증상을 보이는 티모시 증후군 환자 3명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미니 뇌를 만들었다. 이를 쥐의 뇌에 이식했더니 다른 미니 뇌보다 성장이 더디고 신경 신호도 잘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질환의 근본 원인을 연구할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파올라 아를로타 교수는 네이처 인터뷰에서 “오가노이드로 뇌의 복잡한 특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성과”라며 “다음 단계는 개별 인간 신경세포도 쥐의 뇌에 통합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 미니 뇌를 동물에 이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크 생물학연구소의 루스티 게이지 교수는 지난 2018년 미니 뇌를 다 자란 생쥐의 뇌에 이식했다. 하지만 생쥐는 이번에 실험한 쥐보다 몸집이 작고 수명이 짧아 미니 뇌가 동물의 뇌와 완전히 통합되는지 알아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 분자생명공학연구소의 위르겐 크노블리히 소장은 영국 사이언스미디어센터에 “오가노이드를 생쥐보다 더 큰 쥐에게, 그것도 어릴 때 이식해 이전보다 더 발달할 수 있도록 하고 쥐의 행동으로 뇌의 통합 여부를 알아보는 등 연구 방법에서 진전을 보였다”며 “인간 뇌에 대한 실험은 비슷한 영장류에게 하지 못하고 쥐나 생쥐 같은 동물에만 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가노이드 모델은 이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 의식 가진 쥐 가능할까, 윤리 논란도 

일부에서는 윤리 논란을 우려했다. 인간과 동물의 하이브리드는 동물에 해를 주거나 인간 의식을 가진 동물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는 지나친 우려라고 본다. 지난해 미 국립과학공학의학한림원은 “뇌 오가노이드는 의식을 가지기에 미숙한 단계여서 인간과 같은 지능을 얻거나 법적 규제가 필요한 다른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파스카 교수는 미니 뇌가 쥐에게 발작과 기억 손상을 유발하거나 행동을 심각하게 바꾸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