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양자정보연구단, 개방형연구소로 탈바꿈 산학연 협력 강화
다이아몬드로 양자컴 연구, 큐비트 오류정정 등 연구 확대
예측 어려운 양자컴 미래 “우리 삶 변화시킬 것”
올해 첫 마블영화로 '앤트맨 3(앤트맨과 와프스:퀀텀매니아)'가 공개됐다. 마블팬덤이 꽤나 큰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해 많은 관람객을 모았다.
앤트맨의 능력은 핍입자로 몸 크기를 늘렸다 줄이는 슈트에서 나온다. 여기에는 과학적인 개념 '양자역학'이 숨어있다. 물질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구성단위이자 최소단위인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있는데, 둘 사이의 텅빈 공간을 늘렸다 줄였다하면서 물체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영화 적 설정이다. 이 외에도 시간여행, 다중우주 등 여러 양자 개념이 영화 속에 녹아져있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은 SF요소로 상상 속에서만 실현되고 존재하는걸까? 최근 과학자들은 양자기술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이 양자컴퓨터다.
KIST 양자정보연구단연구실 모습.
"영화 앤드게임에서 닥터스트레인지가 타노스에 승리할 방법을 동시에 시뮬레이션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순차적 탐색이 아닌 모든 경우의 수를 동시에 찾는 것,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요."
KIST 양자정보연구단의 이정현 박사가 설명하는 양자컴퓨터는 히어로 닥터스트레인지 능력과 닮았다. 0과 1의 값을 갖는 비트단위로 정보를 순차적으로 처리하고 저장하는 디지털컴퓨터와 달리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 중첩상태를 갖는데, 이를 활용하면 닥터스트레인지 능력처럼 경우의 수를 동시에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컴퓨터보다 빠른 연산이 기대되는 것도 중첩상태를 이용해 가능하다.
현존하는 컴퓨터가 몇만년 걸릴 문제를 수초만에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양자컴퓨터는 미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기존의 보안체계를 무너뜨리는 등 안보위협과도 직결돼 독자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분야다. 미국의 IBM, 구글, 아마존, MS 등이 양자컴퓨터 선점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로 양자컴퓨터를 포함, 올해 예산 984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출연연 중 가장 먼저 양자기술에 도전장 내민 KIST
"KIST는 다이아몬드와 인연이 깊습니다. 국내 최초 공업용합성 다이아몬드를 개발해 상용화하는 등 친숙한 소재입니다. 다이아몬드 소재가 가진 장점을 양자기술에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국내 출연연 가운데 가장 먼저 양자기술 연구개발에 도전한 KIST는 인공다이아몬드를 활용해 양자 소재부터 시스템을 아우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양자암호통신 시스템 기술이전, 세계 두번째 상온 동작 포터블 양자컴퓨터, 센서 측정 한계를 뛰어넘는 양자센서 등 연구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양자컴퓨터를 설명할 때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큐비트다.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 큐비트 단위를 처리하고 저장하는데, 큐비트단위가 50이 넘으면 특정 문제에서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바 있다.
큐비트를 설계하기 위한 방법은 ▲초전도 루프 ▲이온덫 ▲광자 ▲실리콘 양자점 ▲중성원자 ▲고체 점결함 등으로 크게 나뉜다. KIST는 다이아몬드 점결함을 이용해 양자컴퓨터를 연구개발한다.
다이아몬드의 장점은 고온, 고압이 필요한 다른 방법과 달리 상온, 상압에서 작동 가능하다는 점이다. 탄소격자로 이뤄져있는 다이아몬드 격자위치에 탄소가 아닌 다른 불순물을 주입시키면 원자들이 하나의 큐비트처럼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 KIST 외에도 일본 후지츠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등에서 다이아몬드 결함시스템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다만 다이아몬드는 이온덫이나 초전도와 달리 위치제어가 어려워 큐비트 갯수를 늘리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이 박사는 "물리적 한계는 있지만 이론적으로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소자개발, 재료연구자들과 협업해 다이아몬드도 확장성을 갖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KIST는 가장 안정적인 고체로 꼽히는 다이아몬드를 활용한 스핀 큐비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큐비트 개수보다 중요한건 정확도! 오류율정정 확실하게 잡는다
과거 양자컴퓨터 연구는 큐비트 갯수를 늘리는 연구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큐비트를 무조건 많이 확보했다고 빠른 연산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큐비트 하나가 가진 오류율을 줄여야 정확한 연산을 달성할 수 있다. 큐비트 1000개 보다 오류 적은 큐비트 50개가 훨씬 연산능력이 높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KIST는 올해 본격적으로 양자오류정정 연구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 박사는 "영국과 호주가 100큐비트를, IBM가 1000큐비트를 목표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아마존과 구글 등은 오류정정에 집중하는 방향성을 밝혔다"며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결정짓는 요인이 다양한 만큼 우리 연구단도 양자오류 정정을 주제로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하며 "최근 MOU를 맺은 캐나다 기업 자나두와 관련한 업무협력을 추진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또한 양자 오류 해결을 위해 KIST는 반도체 공정, 즉 나노공정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양자컴퓨터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아이온큐를 공동창업한 김정상 듀크대 교수도 최근 국내 학술대회에서 한국의 양자컴퓨팅 연구개발에 반도체를 강조한 바 있다.
이 박사에 따르면 반도체 공정은 원하는 물질을 나노미터 수준의 형태로 제작하는 기술을 활용한다. 양자컴퓨터의 경우 큐비트라는 작은 단위를 제어하고 큐비트를 원하는 위치에 생성하기 때문에 반도체의 나노공정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이 박사는 "다이아몬드 내부에 불순물을 주입하는 '이온주입'을 정확한 위치에 하려면 작은 구멍을 원하는 위치에 제대로 뚫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공정을 반도체에서도 유사하게 쓰고 있어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정밀 이온주입 기술을 이용하여 양자오류정정 기술에 필요한 저잡음 양자 소자를 개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자정보양자컴퓨팅양자센싱 연구를 하고 있는 이정현 박사.
양자컴 후발주자지만...“안보와 연결된 중요 기술, 독자적 기술 확보해야”
"전자컴퓨터의 조상인 에니악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문제를 풀고 일상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양자컴퓨터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전자컴퓨터보다 느린 부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자컴퓨터의 난제라고 여겨지는 수학적 특정 조건에 대한 문제에 특화된 만큼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보다 빠른 연산이 가능 할 것으로 기대되는 양자컴퓨터지만 현재로썬 하드웨어적인 제약으로 한계가 많다. 덧셈뺄셈은 오히려 기존 컴퓨터보다 느릴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나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컴퓨터의 조상 에니악도 처음부터 뭐든 잘 해내진 못했다. 현재 컴퓨터가 그래픽을 만들고 연구, AI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듯 양자컴퓨터도 상용화 이후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이 박사는 “양자 우월성을 가진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고전컴퓨터에서 난제라고 여겨졌던 몇몇 NP-난해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화학, 바이오, 물리학 등 폭넓은 분야에 응용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면서 “또한 양자 우월성을 가진 양자 센싱이 가능해지면 질병의 신속한 진단이나 세포 동역학 미세 연구 등에 응용될 수 있어서 신약개발과 같은 연구에도 활용이 가능하여 막대한 경제적인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안보와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등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양자컴퓨터지만 우리나라는 후발주자다. 정부에서 양자기술에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실제 연구개발에 필요한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과기부가 지난해 양자분야 논문 저자를 총 피인용수로 분석한 결과 한국 연구자수는 500명으로 중국 5518명, 유럽연합 4100명, 미국 3122명, 영국 881명, 일본 800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결국 사람이 한다. 정부가 양자대학원 설립 등 인력확보를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단발성 투자가 아닌 미래중점사업 가능성을 꾸준히 보여주고 실현해야 인재가 자연스럽게 모인다는 것이 과학계 중론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비 양자컴퓨터 연구 후발주자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기술을 사오는게 낫지 않겠냐는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양자기술은 기존 보안체계를 위협하는 등 안보와도 깊게 연관돼있어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하는게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반도체 강국이지만 다음 먹거리도 고민해야한다. 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어야한다. 좋은 인력이 양자기술에 관심 갖고 모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양자정보연구단은 최근 광교에 있던 연구단을 홍릉본원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 중이다. 출연연의 높은 칸막이를 부수고 개방형연구소 탈바꿈하며 학교교수나 기업 등 양자관련 연구자들이 집대성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