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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땅 밑 저장한 탄소 움직임도 분석...산업화 이끄는 호주 '실험실'

등록일 2022-10-21 조회수 12

앞선 기술력 실증...한국과도 협력 진행 


 

지난 6월 겨울이 찾아온 남반구 국가 호주. 남동단에 위치한 빅토리아 주의 해안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들판의 목초를 흔들었다. 소들은 흔들리는 목초를 쫓아 고개를 돌리며 풀을 뜯고 있었다.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도 함께 어우러졌다. 

 

평화로운 들판 아래는 세계 최대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실험실이 숨겨져 있다. 약 4.5km2 면적의 ‘오트웨이 국제시험센터’는 인류 탄소중립 실현의 비책으로 여겨지는 CCUS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한다.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이를 땅 속에 묻어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정부 기관과 대학, 연구소 등 학계를 비롯해 정유기업 등 산업계가 실증 사업에 다수 참여하고 있다. 개발이나 실증 뿐 아니라 비용 절감 등의 기술 성숙기를 거쳐 산업화를 이루는 게 목표다. 

 

 

● 보기엔 그냥 시골마을인데...첨단 CCUS기술 실증 '실험실' 

 

탄소저감 기술들 중에서 CCUS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CCUS 없이 기후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2050년까지 전 세계 온도 상승을 2도로 제한하는 데 필요한 탄소 배출을 13%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CCUS는 대기에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하고 바다 밑 지층이나 땅 속에 저장하는 ‘탄소 포집저장(CCS)’ 기술과 탄소를 다른 유용한 물질로 바꾸는 ‘포집활용(CCU)’ 기술을 합친 것이다. 탄소(Carbon)와 포집(Capture), 활용(Utilization), 저장(Storage)의 앞 글자를 땄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한 탄소를 대기에 배출하기 전 화학 흡수제를 활용해 분리하고 포집하고, 이를 파이프라인이나 선박으로 수송한 뒤 땅 속이나 바다, 암석에 저장한다. 저장된 탄소를 탄산칼슘이나 메탄올, 산업·식품용 액화탄산, 드라이아이스, 반도체 세정액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만큼 오트웨이 센터의 CCUS 기계설비 역시 거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센터는 자연 친화적이었다. 센터는 멜버른에서 차로 2시간 40분 가량 이동해야 하는 거리로 도심에서 떨어진 시골에 위치해 있다. 기존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시골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탄소중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운 듯 보였다. 

 

동행한 박용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C02지중저장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센터는 탄소가 안전하게 포집돼 운송 과정을 거쳐 땅 속에 저장되고 이후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기술들을 실증해보는 곳”이라며 “엄청나게 큰 설비가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 고갈된 가스전에 이미 약 24억원 규모의 탄소 저장 

 

오트웨이 센터에는 총 7개 탄소 주입구가 약 1km 간격 내외로 분포돼 있다. 들판에 빨대를 꽂은 형상으로 땅 속 약 1.5km 깊이까지 이어져 있다. 탄소 주입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주입된 탄소의 활동을 관찰하는 계측기 역할도 한다. 센터 운영기관인 CO2CRC의 폴 바라클로그 프로젝트 매니저는 “환자의 정맥에 카테터를 삽입하는 것과 같이 정교하게 1.5km 길이의 파이프가 땅 속에 박혀 있는 것”이라며 “이 파이프를 통해 탄소가 주입된다”고 말했다. 

 

센터 아래에는 9만 5000t의 탄소가 저장된 것으로 집계된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지난 9월말 기준 t당 2만5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약 23억 7500만원 규모의 탄소배출권 거래가격에 달하는 탄소를 땅 속에 묻은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탄소를 땅에 묻을 수 있던 것은 오트웨이의 특이한 지형 때문이다. 센터 지하에는 고갈 가스전이 존재한다. 가스가 빠져나간 곳에 탄소를 넣을 수 있다. 염대수층도 존재한다. 염대수층은 물을 머금고 있는 암석층으로 탄소를 땅속에 저장하기 좋다. 

 

또 덮개암이 고갈 가스전과 염대수층 상부에 분포한다. 덮개암은 땅 속에 묻힌 탄소가 다시 새어 나오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탄소를 안전하게 주입할 땅 속 장소를 찾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일에 비유될 정도로 찾기 쉽지 않은데 오트웨이는 여러 조건에 부합했다. 

 

 

오트웨이 프로젝트는 2007년 시작했다. 인류의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위기가 가시화되고 세계적 석탄 수출국인 호주에 대한 국제 사회의 눈총이 따가워질 시기였다. 호주는 전체 노동인구 중 약 1%가 석탄을 포함한 에너지 관련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에너지 관련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11%다. 호주는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할 새로운 산업 구조와 국제 사회의 눈총에서 벗어날 새로운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이산화탄소 포집과 저장을 연구하는 기관인 CO2CRC의 주관 하에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바라클로그 매니저는 “호주 정부가 저탄소 배출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긴 호흡으로 추진한 사업”이라며 “호주 연방 정부와 빅토리아 주 정부, 미국 에너지부의 자금을 받아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CCUS 기술 개발과 실증 그리고 산업화다. 탄소 저장을 효율화하고 포집 비용을 낮추고, 탄소 활용 부문을 강조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여기에 협력이란 키워드를 더해 미국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한국 등 과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 결과 지난 15년 간 CCUS 관련 여러 기술력을 축적했다. 광섬유를 이용한 분산형 음향 감지 시스템(DAS)으로 땅 속의 탄소 움직임을 3차원(3D)으로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땅 속 탄소의 움직임을 이틀마다 새로 업데이트 한다. 탄소 주입 정도에 따라 실제 땅 속에서 탄소가 어떻게 거동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밖에 압력을 이용한 탄소 계측 시스템, 새로운 탄소 유체 모델 개발 등을 통해 CCUS의 비용 효율화를 이끌어냈다는 게 C02CRC 측의 설명이다. 바라클로그 매니저는 “새로운 기술로 2007년에 비해 탄소 계측 관련 비용을 최대 85%까지 줄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오트웨이 센터는 세계의 CCUS 기술 실증 실험실 역할도 하고 있다. 다국적 정유기업 BP와 셰브론, 엑손모바일, 쉘 등 산업계, 지질연이나 미국 스탠퍼드대, 영국 에딘버러대 등 학계에서 협력 요청이 줄을 이었다. 바라클로그 매니저는 “제 발로 연구협력을 요청하는 기관이나 기업들이 찾아왔다”며 “탄소배출권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들이 늘어나며 기업들의 관심도 크게 늘었다. 탄소 저감을 통해 비즈니스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점점 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센터 중앙에 위치한 ‘지식 허브’ 사무실에선 새로운 사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탄소 주입과 저장, 계측에 대한 비용 효율화 연구를 이어가는 한편 수소 사업도 벌인다. 바라클로그 매니저는 “수소 사용이 2050년이 되면 약 10배 가량 늘어날 것”이라며 “땅 속은 수소 저장소로 활용이 가능하다. 센터가 가진 기존 데이터를 활용하면 땅 속 수소 저장소에 대한 타당성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고 말했다. 

 

지질연은 지난 6일 CO2CRC와 CCUS 관련 기술협력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CO2CRC와 협력하는 공식 회원이 돼 함께 CCUS 관련 연구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박용찬 책임연구원은 "오트웨이 센터는 세계의 과학자들이 CCUS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해보는 세계의 실험실"이라며 "한국도 오트웨이 센터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여 CCUS 기술을 실용화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지역사회 반발 꾸준한 대화와 소통으로 풀어" 


 

한국은 1990~2017년까지 연평균 5%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철강과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반도체 등 제조업을 기반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수출을 확대해왔다. 이 과정에서 경제와 산업 성장에 의한 에너지 사용량 증가로 한국은 2018년 기준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로 올라섰다.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탄소중립을 향한 전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탄소중립 2050' 비전을 수립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 실현 방안으로 CCUS를 핵심기술로 제시했다. 하지만 수송기술, 저장소 탐사기술, 주입기술, 모니터링 기술 등 분야에서 국내 기술 수준은 미국 100점 대비 75점 수준으로 평가된다. CCUS 실현을 위해선 기술력 확보라는 허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또 다른 장애물도 있다. 바로 실제 탄소를 저장할 지역 주민들이 반발이다. 땅 속에 뭔가를 집어넣는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한다. 2017년 발생한 포항 지진 등에 따른 영향이다. 포항 지진은 지열발전을 위해 고압으로 주입한 물이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활성화해 일어난 촉발지진으로 분석된다. 관련 여파로 포항 인근에서 진행되던 해상 CO2 지중저장 실증사업 역시 중단됐다. 사회적 반발을 고려한 것이다. 

 

호주 오트웨이 역시 이런 반발에 부딪혔다. 호주는 지진대를 피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지진 발생 자체는 적다. 하지만 농업과 목축업을 생계로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은 오트웨이 센터로 인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했다. 

 

바라클로그 매니저는 "지역사회와 꾸준히 대화하며 그들을 설득했다. 센터가 그들의 삶에, 그들의 생업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과 그들의 이야기를 반영해 센터 설립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센터가 자연친화적으로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은 점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또 매달 지역 주민들과의 만남을 갖고 있으며 분기별로 소통 레터도 발간하고 있다.

 

 

○ "호주 탄소 포집·저장 t당 30 호주달러...경제성 갖추고 있다"

 

 

국내 지역 사회 반발로 인해 포집한 탄소를 해외로 운송하는 방안도 고려된다. 세계 주요국들이 탄소세를 도입하면서 운송비를 포함해도 사업 경제성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CO2CRC 본사에서 만난 마티아스 라브 대표는 "오트웨이 센터는 한국에서 생산된 탄소의 저장장소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한국의 대규모 탈탄소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브 대표 설명에 따르면 CO2CRC는 CCUS 관련 기술 개발을 통해 탄소 포집과 저장에 필요한 금액을 t당 30 호주 달러(약 2만6832원)로 낮췄다. 지난 6월 기준 호주에서 탄소 배출권 가격은 t당 36달러(약 3만 2199원)였다. CCUS가 비용적인 측면에서 경제성을 갖춘 것이다. 라브 대표는 "산업계에서 개발한 CCUS 기술보다 CO2CRC의 기술이 약 10년 정도 앞서 있다고 분석된다"고 말했다. 

 

라브 대표는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질연 등과의 협력을 통해 이미 한국과 오랜 신뢰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탄소중립은 기후변화 위기에 전 세계가 함께 성취해야할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과의 협력도 이미 진행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호주 산업과학에너지자원부와 협의를 통해 CCUS 협력프로젝트에 24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호주 정부 역시 이에 상응하는 규모를 매칭하기로 했다. 한국의 SK E&S와 무역보험 공사, 국내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K-CCUS) 추진단, 호주의 CO2CRC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라브 대표는 "CCUS는 기후위기 해결 솔루션 중 하나"라며 "다른 솔루션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중요한 솔루션으로 기술 개발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책임연구원 역시 CCUS가 솔루션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다만 박 책임연구원은 "무조건적인 혹은 만능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기후위기 솔루션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자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한 기술"이라며 "단번에 뭔가를 이뤄낸다기보다 협력을 통한 기술 개발로 비용 효율화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K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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